"차 댈 곳 없어 빙빙"…아파트 주민들 불만 폭주한 이유 [오세성의 헌집만세]

2 days ago 6

경기도 군포시의 한 노후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대거 설치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경기도 군포시의 한 노후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대거 설치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기존에도 부족하던 노후 아파트 주차장이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체 주차장의 일부를 친환경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으로 두도록 의무화하면서 주민들의 불편도 한층 커졌습니다.

최근 노후 아파트에서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이 다수 들어서고 있습니다. 기존 아파트에 대한 전기차 주차구역·충전시설 확대 의무 유예기간이 내년 1월 만료되는 탓입니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존에 지어진 1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전체 주차면의 2% 이상을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과 충전시설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전용 주차구역 설치비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합니다.

평일 낮에도 주차장이 가득 찬 노후 아파트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평일 낮에도 주차장이 가득 찬 노후 아파트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문제는 기존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단지에도 이행이 강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련 시행령에서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이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설치 의무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설치가 곤란하다고 판단할 명확한 기준은 없는 탓입니다.

일례로 경기도 군포시의 한 노후 아파트에는 최근 전기차 충전시설이 대거 설치됐습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일반 차량도 해당 공간에 주차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충전시설 가동 이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주차장이 더 줄어들면 주차난이 한층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1992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646대 규모 주차장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구 수는 1329가구로, 실제 주차 공간은 가구당 0.4면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가운데 13면 이상이 전기차 충전시설과 전용 주차구역으로 변경될 예정입니다. 지난 30일 찾은 해당 단지는 출퇴근 자가용이 자리를 비운 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이 자동차로 가득했습니다.

노후 아파트 보행자 도로에 주차장을 찾지 못한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노후 아파트 보행자 도로에 주차장을 찾지 못한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전날 밤의 주차 전쟁 여파인지, 보행자 도로를 차지한 자동차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주민은 "이미 주차장이 부족해 이중주차, 삼중주차는 물론이고 보행자 도로에도 차를 대고 있다"며 "밤에는 그것도 부족해 단지 주변 도로까지 주차장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더 줄이면 어쩌라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경기 안산의 다른 노후 단지도 최근 전기차 충전시설과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녁 시간만 되면 주차난을 겪어야 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을 마련하는 탓에 주민들의 냉담한 평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주민은 "퇴근이 조금만 늦으면 차를 댈 곳이 없어 단지 곳곳을 빙빙 돌아야 한다"며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은 텅텅 비고, 나머지 주민들의 불편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친환경자동차법은 전기차 충전 구역에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를 주차하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지 내 주차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이 비어있더라도 내연기관 자동차는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기 안산의 한 노후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됐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경기 안산의 한 노후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됐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전용 주차구역과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비용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후 아파트는 원활한 충전을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변압기도 교체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장기수선충당금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흥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정부가 충전시설을 의무화하지 않았다면 대당 300만~400만원에 달하는 충전기 설치 비용도, 1억원에 육박하는 변압기 교체 비용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대부분 아파트에서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액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매달 내는 충당금을 늘리면서 이미 주민들이 민감한 가운데, 수익자가 특정되는 고가 설비를 공공 자금으로 설치하면 누가 좋다고 하겠느냐"며 "전기차를 타는 극소수 입주민을 위해 장기수선충당금을 쓴다고 하니 주민 반발이 너무 크다. 정부 때문에 우리만 욕받이가 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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