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골목도 APEC 무대” 아침엔 대청소, 밤엔 순찰 나선 시민들

13 hours ago 2

[경주 APEC]
경주시민들 “내가 민간대사”
월 1회 ‘클린데이’ 정해 자발적 청소… 상인들 100여개 점포 화장실 개방
휴가 낸 직장인-70대 노교수도 봉사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시. 2025.10.23 뉴스1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시. 2025.10.23 뉴스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이 내 집 앞을 지나갈 수도 있잖아요.”

28일 오전 8시, 경북 경주시 사정동의 한 주택가에서 양손에 빗자루를 든 김성오 씨(58)는 골목길을 쓸며 말했다. 김 씨의 집 앞은 관광명소 황리단길과 맞닿아 있다. 서울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따온 이 거리는 경주시 황남동의 대표 거리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시민단체 활동이냐’는 질문에 김 씨는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쓰레기 쌓인 골목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뿐”이라며 “내 집 앞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장이란 마음으로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 시민 나서 ‘클린데이’… 밤엔 순찰까지

오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첨성대 일원은 문화예술 첨담기술이 융합된 축제장으로 변모했다. 뉴스1

오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리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첨성대 일원은 문화예술 첨담기술이 융합된 축제장으로 변모했다. 뉴스1
APEC 개막을 앞두고 경주 시민, 상인,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퉈 손님맞이에 나섰다. 정부 대표단 7700여 명, 기업인 1700여 명 등 회의 참석 인원만 약 2만 명, 관광객까지 더하면 수십만 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24만 명인 경주로서는 도시 규모를 훌쩍 넘는 손님을 맞는 셈이다.

시민들은 모두 ‘시민대사’가 됐다. 지역민들이 만든 ‘경주시민자원봉사단’은 매달 넷째 주 수요일을 ‘APEC 클린데이’로 정해 시내 곳곳을 청소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체 중심이었지만 회의가 가까워질수록 개인 참여가 크게 늘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방문객들로부터 ‘도시가 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보문관광단지에 집중된 경찰 인력을 보완하기 위해 시민들은 자발적인 야간 순찰에도 나섰다. 경주자율방범연합대는 황리단길과 금리단길, 시외버스터미널 등에서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순찰을 돌고 있다. 백승훈 경주자율방범연합대장은 “낯선 환경에서도 외국인 방문객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손을 보탰다. 황남시장, 황리단길 일대의 100여 개 점포가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했다. 이병희 황리단길상가연합회장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깨끗하고 친절한 도시 이미지를 만들자는 데 뜻이 모였다”고 말했다. 상가연합회는 회의 기간 ‘무단 쓰레기 투기 금지’ 캠페인도 함께 진행한다.● 71세 자원봉사자 “외국인 안내하려 체력 키워”

APEC 준비지원단에 등록된 254명의 공식 자원봉사자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국제미디어센터(IMC), 정상 숙소, 관광지 등에서 안내, 통역, 질서 유지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시영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71)는 자원봉사자 중 최고령자다. 대구 출신이지만 40년 넘게 산 경주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이 교수는 “외국인을 안내하려면 체력도 필요해 매일 아침 운동한다. 무뎌진 영어 감각도 되살리고 있다”며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경주와 한국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대학생 이예린 씨(23)는 APEC 개최 한 달여 전부터 방문객들에게 소개해줄 경주 명소와 맛집 정보를 수집했다. 이 씨는 “K푸드가 인기라 경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을 것 같다”며 “경주 내 주요 식당을 직접 방문해 맛을 체크했고, 그중 만족도가 높은 식당을 세계인들에게 알려줄 계획”이라고 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박철호 씨(56)는 일주일간 휴가를 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박 씨는 “일을 쉬더라도 직접 방문객을 돕고 싶었다”며 “경주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러 관광지도 함께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경주=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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