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밭 다 탔는데 뭐 먹고사나”…이재민 떠나 마을 통째 사라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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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의 한 주택이 산불로 인해 잔해만 남았다. 2025.03.31. 뉴시스

31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의 한 주택이 산불로 인해 잔해만 남았다. 2025.03.31. 뉴시스
“부모님 젊었을 적부터 70년 살아온 집인데 호밋자루 하나 안 남기고 다 타부렀어. 정부 지원이 없으믄 이 동네는 더는 뭐 살아갈 길이 없어. 먹고 살 길이 없는데 자식들 있는데로 가든가 대구로 나가든가 해야지. 다 떠나야지.”

31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상논실마을에서 만난 산불 이재민 최윤기 씨(65)는 집과 농작지 1500평이 모두 불에 탔다고 했다. 21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25일 영양까지 번지면서 이 마을 주택 22채 중 15채가 전소됐다. 최 씨는 “어르신들도 자식 사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상황”이라며 “마을 자체가 사라지게 생겼다”고 씁쓸해했다.

● 집도 밭도 타버린 이재민들 “먹고 살 게 없으니 떠나”

남부 산불의 큰 불은 꺼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중 일부는 지역을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집도 밭도 사라졌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여기서 뭘 해서 먹고 살겠나”고 되물었다. 상논실마을에서 만난 한 이재민은 “남아 있는 게 몸밖에 없다. 대피할 때 가져나온 차와 몸이 전부”라고 말했다.

30일 취재팀이 경북 의성 단촌면 병방리에서 만난 주민 김규환 씨(68)는 2억3000만 원을 들여 4500평에 달하는 고추, 마늘 농사를 지었지만 이번 산불로 전소됐다. 그는 “정부 대책은 시간이 오래 걸려 다른 도심으로 옮겨갈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만난 마을 이장은 “피해를 입은 150여 가구 중 10가구 정도는 대도시로 옮겨가시지 싶다. 아무리 정이 든 동네라고 하더라도 집 없이 살 수가 있냐”고 말했다. 김해춘 안동시 고곡리 이장은 “집을 새로 지어도 있던 자리보다 여건이 좋은 대도심에서 시작하는 게 낫다는 어르신들이 계시다”고 말했다.

● 도시에 온 귀농인들, 다시 도시로

28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와 이사리 일대 마을이 산불에 전소돼 있다. 2025.03.28. 뉴시스

28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와 이사리 일대 마을이 산불에 전소돼 있다. 2025.03.28. 뉴시스
지역에 연고가 없이 정착했던 귀농인들은 다시 도심으로 옮겨가려는 경우가 노인들보다 많았다. 3년 전 경북 청송군 후평리에 귀농해 사과 농사를 짓다 이번에 모두 잃은 류영우 씨(59)는 “희망찼던 귀농의 꿈이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했다”며 “단 하루라도 더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잠시 살았던 인천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김형동 경상북도 귀촌귀농연합회장은 “피해 지역에 사는 귀농귀촌인 약 100명 중 30명 정도가 귀도(도시로 돌아감)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며 “산불이 비켜간 김천 등에서도 ‘겁이 나서 방을 내놓고 다시 서울로 가려 한다’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앞으로 반복되는 재난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인구 유출이 가속화 될거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이번 산불 피해가 컸던 경북 의성, 안동, 영양, 청송, 영덕은 인구 유출로 인해 지역 소멸 위험이 큰 ‘고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 전문가들 “일자리-주거 지원 늘려야”

경북 의성군 단천면 두계리에 사는 박모 씨(66)도 “시골 마을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 60대들은 마을을 지키겠지만, 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집을 잃은 경우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여건이 안 되는 이주민들은 “돈이 없어서 옮길 수도, 이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시내는 집세도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논실마을의 한 이재민은 “나이 60넘어 지금 다른 지역에 가서 뭘 해 먹고 살겠나”라며 “대책이 없다”고 막막해했다.

전문가들도 산불 피해가 지역 인구 유출과 인구 소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이재민들이 언제까지나 임시 대피소나 학교에서 지낼 순 없다”며 “생계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일자리와 주거 지원 등을 늘려 재정착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영덕=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영양=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의성=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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