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경험에 닿아 숙성될 때, 통찰[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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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왜 늘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떻게 가까운 사람이 조금만 멀어져도 불안해지는지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막상 ‘왜’ 또는 ‘어떻게’를 설명하려고 하면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알고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신분석은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을 구분해 왔습니다. 아는 것은 사실과 설명을 머릿속에 담아 두는 일입니다. 깨닫는 것은 그 사실과 설명이 자신의 감정과 몸, 관계의 경험에 닿아 삶의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온몸으로 겪어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지식은 변화를 위한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지식이 변화 자체는 아닙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내용을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피분석자가 분석가의 해석을 듣고 “그렇군요”라고 답하더라도, 그 말이 그 사람의 정서적 경험과 만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치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피분석자가 자신의 심리적 저항을 알아차리고, 그동안 피하거나 반복해 온 감정과 마주할 때 분석가의 해석은 비로소 자기 경험의 일부가 됩니다. 설명을 받아들이는 일과 그 설명을 실제로 겪어내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윌프레드 비온은 앎의 관계를 ‘K’라고 부르고, 궁극적 진실을 가리키는 ‘O’와 구별했습니다. K는 대상을 알고 설명하려는, 지식의 측면입니다. 정신분석에서 지식은 고통스러운 진실에 다가가는 길이 아니라, 그 진실을 피하는 방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능숙하게 말로 표현하는 순간에 정작 두려움이나 분노를 피분석자가 경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온이 말한 ‘마이너스 K’는 앎이 진실을 향하기보다 진실을 거부하는 데 쓰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피분석자와 분석가 모두 정신분석적 지식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깊이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지식은 매우 손쉽게 얻어집니다. 검색창이나 인공지능(AI)에게 질문을 던지면 많은 정보가 순식간에 쌓입니다. 하지만 정보가 쌓일수록 그것을 소화해서 자기 생각으로 바꿔야 하는 부담도 늘어납니다. 그 정보 더미에서 무엇이 나에게 와닿는지, 어떤 경험과 연결되는지, 그 정보를 써서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지식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연결돼 숙성되는 시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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