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자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이 현금성 자산으로 대거 대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시가 반등하자 일단 차익을 실현하고, 대기자금으로 두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 반등하자 차익 실현
3일 ETF 정보플랫폼 ETF체크에 따르면 지난달 주식형 ETF에서 총 5242억원이 순유출됐다. 채권형에는 1조8900억원, 단기자금형에는 1조6600억원이 순유입됐다. 주식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위험 회피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주식형 중에선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의 자금 유출이 두드러졌다. 전체 ETF 가운데 가장 많이 유출된 상위 5개 중 4개가 국내 증시를 따라가는 지수형이었다. 순매도가 몰린 대표적인 상품은 ‘TIGER MSCI Korea TR’(5839억원)이었다.
국내 주식 82개를 담은 MSCI 코리아 지수를 추종하는 ETF다. ‘KODEX 200’(2129억원), ‘KODEX 코스닥 150’(1438억원), ‘KODEX 레버리지’(1421억원) 등에서도 대거 자금이 빠져나갔다. 반대로 코스피200지수 하루 하락폭의 두 배만큼 수익을 내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에는 2800억원이 순유입됐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는 지난주에만 100포인트 넘게 상승하며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며 “미국 관세 정책 등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차익실현 압력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채 저가 매수 나선 개미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채권과 ‘파킹형’ 상품으로 흘러들어갔다. 채권형 ETF 가운데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린 건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2159억원)였다. ‘KODEX 미국30년국채액티브(H)’(1117억원)에도 자금이 몰렸다. 지난달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채권 가격 하락)하면서 저가 매수 수요가 유입됐다.
4월 말 연 4.1%까지 하락했던 미 국채 10년 만기 수익률은 지난달 중순 연 4.6% 수준으로 급등했다. 30년 만기는 같은 기간 연 4.6%에서 5.0%로 뛰었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 법안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20년 만기 국채 수요 부진 등 악재가 맞물렸다. 국내 투자자들은 국채 금리 상승을 매수 기회로 삼았다.
증권가에서도 하반기엔 미 국채 금리가 하락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가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장기채 가격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이라며 “채권시장이 혼란스러울 때가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채 10년 만기 금리가 하반기에 최저 연 3.9%까지 떨어질 것이란 게 삼성증권 예상이다.
단기자금형 상품 중에선 머니마켓펀드(MMF)와 단기채권형이 인기였다. ‘KODEX 머니마켓액티브’(8138억원) ‘TIGER 머니마켓액티브’(4855억원) ‘1Q 머니마켓액티브’(1903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단기자금형이지만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나 무위험지표금리(KOFR)만큼 수익을 제공하는 ETF에선 자금이 빠졌다.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에서 2730억원,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에선 212억원이 유출됐다. CD나 KOFR 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따라가지만, MMF는 기업어음(CP)이나 초단기 채권 등에 투자하는 구조다.
한 운용사 임원은 “지난달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앞두고 고금리 CP를 미리 담은 MMF가 많았다”며 “기준금리를 바로 반영하는 CD나 KOFR 금리보다 MMF나 단기채의 기대 수익률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