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활성화" 내세운 정부…업계는 "핵심 빠졌다"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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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통해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힘을 싣겠다며 나섰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빠진 대책이라는 평가 때문입니다.

9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9·7 공급대책에는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제도를 종합적으로 개편해 사업 속도를 높이고 사업성을 개선해 주택 공급을 촉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세부적으로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동시에 수립하도록 하고 행정 절차를 개선해 조합 설립을 보다 쉽게 만들 예정입니다.

또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 인가도 동시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국토교통부 산하에 통합분쟁위원회를 신설, 산하 도시분쟁위원회에서 공사비와 이주비 갈등을 조정하도록 했습니다. 건축물 높이 제한과 공원녹지 기준도 완화하고 용적률 특례를 확대하는 한편, 공공기여로 발생하는 임대주택 인수가격도 높인다는 방침입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서울 40만 가구, 수도권 68만 가구 등의 공급을 촉진하고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 23만4000가구 신규 착공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재건축을 추진 중인 1기 신도시에 대해서도 선도지구 선정 방식을 공모 방식에서 주민제안 방식으로 바꾸는 등 사업 절차와 방식을 개선해 2030년까지 수도권 6만3000호를 착공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민 부담 커져…재건축 활성화하려면 재초환부터 손봐야"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알맹이가 빠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재건축을 활성화하려면 조합원들의 부담 완화가 필수적인데,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에 대한 논의는 빠졌기 때문입니다.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을 통해 조합원이 얻은 이익이 8000만원을 넘을 경우, 초과분의 최대 50%까지 국가가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입니다.

앞서 국토부가 진행한 시뮬레이션에서는 전국 58개 단지가 조합원 1인당 1억328만원씩 부담금을 내야 할 것으로 나왔습니다. 서울에서는 29개 단지가 부담금 납부 대상이었는데,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 후 집값이 크게 뛰면서 1인당 부과액이 3억9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자기 집을 내놓고 수억원에 달하는 공사비 분담금까지 내면서 새집에 입주했더니 억대 영수증이 추가로 청구되는 격입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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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재초환은 개발이익 일부를 공공이 환수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사업성 저하로 인한 공급 차질 등 부작용도 분명하다. 실제 시행은 계속 유보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당의 결정과 국회 협의에 따라 제도가 어느 정도 시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폐지 또는 유지를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고 결론을 유보했습니다.

서울의 한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재건축 부담이 커져 사업 추진이 한층 어려워졌다"며 "막대한 (공사비) 분담금에 더해 억대 (재초환) 부담금까지 부과되면 집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비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재초환은 아니지 않으냐"며 "소유주 부담을 줄이지 않는 한 재건축 활성화는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리모델링 업계에선 "내력벽 철거·수직 증축 규제 풀어야"

사업성 부족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대책에는 리모델링에서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주택을 둘 이상으로 분할해 일반분양할 경우 분양분을 가구 수 증가분으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분양 수익을 늘리고 조합원 부담은 줄이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원하는 대책이 아니었다"는 반응이 쏟아집니다.

리모델링 업계는 내력벽 철거와 수직 증축 활성화를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내력벽은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벽으로, 현재 가구 내 내력벽 철거는 허용되지만, 가구 간 내력벽 철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내력벽을 유지해야 하는 리모델링에서는 최신 평면을 도입하는데 큰 제약이 있습니다. 리모델링 평면이 동굴처럼 길고 비좁다는 통념이 생긴 원인도 내력벽에 있습니다.

2013년 제도 개선을 통해 도입된 수직 증축 리모델링도 실제 착공된 사례는 서울 강남구 '대치현대1차'와 송파구 '잠실 더샵 루벤(송파 성지 리모델링)' 2곳뿐입니다. 특히 가구 수를 유지하면서 1층을 필로티로 바꾸는 경우를 2023년 법제처가 수직 증축으로 해석하면서 수직 증축 리모델링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국내 최초 공동주택 수직증축 리모델링 단지인 서울 송파구 송파동 '잠실 더샵 루벤' 모습. /사진=포스코이앤씨

국내 최초 공동주택 수직증축 리모델링 단지인 서울 송파구 송파동 '잠실 더샵 루벤' 모습. /사진=포스코이앤씨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의 한 단지 관계자는 "리모델링 제도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라며 "국토부는 내력벽 철거 문제를 10년가량 끌고 있고, 과도한 법 해석 탓에 수직 증축도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 이제는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라고 꼬집었습니다.

전문가들도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려면 조합원의 부담을 줄여야 하는데, 재초환 등의 내용이 빠졌다"며 "추후 이에 대한 내용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공공 주도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도심 공급을 위해서는 민간 정비사업이 필수적"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도 리모델링 등에 대해 강하게 얘기했던 만큼 향후 추가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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