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들이 모험자본 공급에 속도를 낸다. 주춤했던 금융권 벤처투자가 정부의 대대적 벤처투자 확대 움직임에 발맞춰 빠르게 집행되고 있다. 벤처펀드 주요 출자자들도 투자 집행에 맞춰 당초 약정된 투자금을 연이어 투입하기 시작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KB인베스트먼트와 베저스인베스트가 공동 운용하는 사모투자펀드(PEF) 케이비베저스차세대모빌리티이에스지제1호는 지난 7일 펀드 출자자들에게 여덟번째 출자(캐피털콜)를 요청했다. 이번 자금 납입은 지난해 말 이후 8개월만에 이뤄진 캐피털콜이다.
이 펀드는 지난 2022년 1100억원 규모로 결성됐다. 세탁서비스 런드리고를 비롯해 차세대 모빌리티 업체에 주로 투자한다. KB국민은행과 KB캐피탈 등 KB금융 계열사를 비롯해 수출입은행 등이 주요 출자자다.
KB금융이 2023년 2500억원 규모로 조성한 KB 글로벌 플랫폼 2호 펀드도 올해 하반기 들어 투자를 재개했다. 지난해 말 이후 이뤄지지 않았던 출자자 자금 납입이 6~7월 연속으로 이어졌다. 이 펀드는 KB국민은행, KB증권, KB손해보험, KB국민카드, KB캐피탈 등 KB금융 주요 계열사와 콜마그룹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 중이다.
NH농협그룹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열 증권사인 NH투자증권과 NH벤처투자가 공동 운용하는 'NH 디지털 얼라이언스 펀드'에 계열 금융사들이 하반기 들어 연이어 자금을 납입하기 시작했다. 20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이 펀드는 디지털 혁신금융 분야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를 목적으로 출범했다. 이달과 지난달의 두 차례 출자금 납입으로 펀드 약정액 절반 이상을 채웠다.
신한금융그룹 디지털 전략적투자(SI) 펀드인 '신한 하이퍼 커넥트 투자조합 제1호'도 하반기 들어 투자를 재개했다. 지난해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해빗팩토리에 투자했던 이 펀드 역시 지난해 10월 이후 약 10개월만에 펀드에 추가 자금을 채웠다.
각 금융계열 벤처펀드 주요 출자자로 이름을 올린 은행권과 여전사도 캐피탈콜을 위해 분주하게 회사채 발행에 나서며 자금 조달에 한창이다. 이 밖에도 정책금융기관 계열 여전사인 산은캐피탈과 IBK캐피탈 등도 하반기 들어 인프라 관련 PEF에 출자금을 납입을 재개했다.
하반기 들어 금융계열사 벤처투자와 약정 출자액 납입이 다시 시작된 것은 정부가 모험자본 활성화 방침을 공표한 영향이 크다. 또 금융지주 벤처투자를 가로막았던 벤처투자 관련 위험가중자산(RWA) 규제가 완화된 것도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앞서 대형 펀드를 조성했던 금융사를 중심으로 자금 회전이 시작된 것이다.
벤처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연말로 갈수록 벤처투자 본격화 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향후 첨단전략산업기금 등 대규모 정책 자금 투입이 예고된 만큼 벤처투자를 위한 추가 출자 여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이미 약정한 펀드에 대해서도 문제 없이 캐피털콜을 수행할 예정”이라면서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금융권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