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성지’ 광안리 고깃집엔 청년의 정성이 있었다 [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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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석화연’. 김도언 소설가 제공

부산 수영구 ‘석화연’.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노포를 사회학의 프레임과 레토릭으로 글을 써오면서 내가 확인한 것은 노포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가 창업주든, 고용된 경영자든, 아니면 직원이든 그들의 손과 발로 만들어 내는 루틴이 노포의 문화를 특정 짓고 역사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노포에서 내는 음식은 당연히 노동 없이 탄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특히 노포의 서비스는 그 집의 노동철학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광안리는 젊음의 성지다. 해운대가 남녀노소 두루두루 사랑받는 부산의 얼굴이라면 광안리는 특히 젊은 세대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는 부산의 심장쯤 된다. 광안리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들을 내는 맛집도 즐비하다. 활어회와 선어회, 조개 같은 해산물은 기본이고 외국 음식점, 퓨전 음식점도 많다. 당연히 고깃집도 있다.

내가 찾은 곳은 ‘석화연’이라는 고깃집이다. ‘KOREAN BBQ’를 표방하는 곳인데, 광안대교와 스카이라인이 정면에 펼쳐지는 목 좋은 곳에 있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숙성삼겹살을 시키자 젊고 인상 좋은 직원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었다. 통삼겹살을 숯불 불판 위에 올리고는 집게로 일정한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뒤집는다. 그러곤 가위로 자르고 그것들을 가지런히 정렬시키고는 또 한 점 한 점 골고루 뒤집으며 익힌다. 그의 손길에 정교하게 통제되는 고기들은 어느 것 하나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일정하게 구워진다. 고기쌈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일러주는 그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묻자 그는 귀찮아하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답하더니 자신을 ‘올해 스물아홉에 미혼인 구정재 매니저’라고 소개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구운 미나리와 백김치, 고기를 멜젓과 생와사비에 찍어 싸먹는 고기 맛이 정말 맛있던 데다 눈앞에 펼쳐진 광안리 바다의 깊고 푸른 위엄에 반해 소주가 마치 와인처럼이나 달콤하게 넘어갔다. 구 매니저에게 고기 맛의 비결을 물으니 자신들이 개발한 숙성 방법을 적용시킨 드라이에이징(건식숙성)과 웻에이징(습식숙성)을 통해 고기의 향과 육즙을 모두 잡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선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석화연 대표는 직원들에게 투철하고 완벽한 서비스를 강조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일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는 구 매니저는 언젠가 자신만의 요식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손님들 대부분이 자기 또래인 이곳에서, 한껏 멋을 낸 또래들과 달리 그는 늘 같은 유니폼을 입고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활 중에 문득문득 비애감이 들 때가 왜 없었으랴. 일을 하던 중에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광안리 바다에 뛰어들어 멀고 먼 바다로 헤엄쳐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으리라. 그도 뜨거운 젊음 한복판에 있으니까.

하지만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 미래에 대한 꿈을 품으며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공한 노포의 서사는 이러한 꿈에 대한 존중과 응원에서 시작됐으리라. 발레를 보다 보면 솔리스트가 나와 단독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있다. 내가 한 테이블을 통제하면서 토털 서빙을 하는 구 매니저를 보면서 떠오른 게 바로 발레 솔리스트였다. 그가 내 눈엔 발레 솔리스트 못지않은 예술가로 보였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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