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내세운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는 '기업 규제 완화'다. 산업 활성화를 위해 과도한 행정규제를 걷어내고 혁신 기업들이 숨 쉴 수 있도록 제도 환경을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 약속이 여전히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대표 사례가 시험·인증기관에 대한 과도한 '업무정지' 처분이다.
ICT 제품은 시험기관 없이는 한 걸음도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다. PC, 모뎀, 셋톱박스, 네트워크 장비, 사물인터넷(IoT) 기기 등 ICT 제품은 모두 전파법과 전기안전법 등 각종 규제에 따른 시험·인증을 거쳐야 출시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 역할을 수행하는 공인시험기관은 대부분 중소형 민간기관과 일부 정부 산하 시험기관이다. 대기업은 대부분 자체 시험기관을 보유한 것과 달리 중소 ICT 제조 기업은 공인시험기관의 인증 없이는 단 한 대의 제품도 합법적으로 출시할 수 없다.
문제는 시험기관이 경미한 행정 실수나 위반으로도 업무정지 처분을 받으면 그 여파가 중소 제조기업에 고스란히 확산되는 것이다. 특정 시험기관이 몇 개월간 업무가 중단되면, 해당 기관을 이용해온 수많은 중소 ICT 제조사 인증 절차에 큰 지장이 생긴다. 제품 출시가 지연되고, 글로벌 시장 진출 일정도 차질이 생긴다.
“다른 시험기관이 많이 있으니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중소 제조사는 대부분 자사 제품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디버깅 등 문제 해결 경험이 많은 특정 시험기관을 꾸준히 이용한다. 시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 문제까지 해결하는 동반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시험기관으로 옮기면 자사 제품 이해도가 낮아 기술적 적합성 문제 해결이 더뎌지곤 한다. 이미 밀려 있는 타사 주문 때문에 인증 일정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소기업은 치명적인 매출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산업통상자부 국표원 소관 인증기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파연구원 소관 인증기관 간 형평성도 문제다.
산업부 산하 제품 시험기관들은 경미한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나 시정명령 중심으로 처분이 이뤄진다.
반면 전파·통신 장비 인증을 담당하는 과기정통부 전파연구원은 곧바로 업무정지라는 강력한 제재를 내린다. 과징금 제도가 지난해 도입됐지만 실제 처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시험분석 업무는 대부분 행정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경미한 사안까지 업무정지로 이어지면, 해당 시험기관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피해가 돌아간다. 과징금 중심의 합리적 처분 기준이 절실하다.
규제 완화는 선언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시험기관의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은 필요하지만, 업무정지로 인한 연쇄 피해를 제조사가 떠안아야 하는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중소 ICT 기업이 제때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규제가 아닌 정책의 몫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한 정부라면, 시험기관 업무정지 제도의 문제점을 기업 입장에서도 귀 기울이고, 정부 간 규제 형평성과 합리성도 고려해야 한다.
송효택 한국스코프쓰리협회 부회장 htsong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