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과 DC가 내리막길을 걷는 글로벌 흐름과 달리 한국에서 슈퍼히어로 장르는 꾸준히 제작되고 만족스러운 흥행까지 거두고 있다. 강풀 원작의 드라마 ‘무빙’,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하이파이브’ 역시 이런 성공 반열에 올라갈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온 ‘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 중 가장 놀라운 기록으로 말이다.
영화 ‘스윙 키즈’ 이후 7년 만에 귀환한 강형철 감독의 ‘하이파이브’는 이식수술을 받고 어쩌다 슈퍼히어로가 된 다섯 명이 만나 공공의 적을 물리치고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히어로 영화이자 가족 드라마다. ‘무빙’ ‘염력’ 등 이전의 한국형 슈퍼히어로 콘텐츠가 그랬듯 이 작품 역시 헌신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통한 부성과 소외된 이들이 유사 가족 형태를 이룬다는 서사가 두드러진다. 이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와의 차별점인 동시에 이 장르가 한국시장에서 꾸준히 소비되는 데 기여하는 요소다.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태권도장의 딸 완서(이재인 분)가 심장 이식수술을 받으며 전개된다. 완서 아버지이자 왕년의 금메달리스트 태권도 선수 종민(오정세 분)은 엄마 없이 자란 완서가 수술 후에도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지내던 완서에게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징후들이 생긴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거나 초인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 것이다.
완서는 다른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야쿠르트 아줌마 선녀(라미란 분)는 초능력자의 능력을 배가하는 능력, 사이비 교단이 운영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약선(김희원 분)은 치유 능력,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 분)은 강풍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췌장을 이식받아 특별한 능력을 얻은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박진영 분)은 영생하기 위해 다섯 명을 포획할 음모를 꾸민다.
강 감독은 전작 ‘써니’와 ‘스윙 키즈’의 기반이 된 앙상블 캐릭터의 서사적 구조를 이번에도 이어나간다. 전작에서도 그랬듯 그의 캐릭터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톨이거나 실패를 거듭하는 낙오자 아니면 지독히 평범한 인물이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필연적으로 연대하는데, 이 우정과 연대는 결핍과 외로움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인 동시에 불행한 인생을 구제하거나(써니),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는(스윙 키즈) 기적을 만든다.
이에 더해 ‘하이파이브’ 캐릭터들은 공장 내 사이비 교단의 교인 수천 명을 구하는 등 강 감독의 이전 캐릭터들이 한 선행을 초월한 업적을 이뤄낸다.
결론적으로 ‘하이파이브’는 ‘미미한 인물들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강 감독의 세계관을 계승하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전작보다 더 큰 다이내믹과 영리한 리듬감으로 중무장했다는 점에서 강 감독의 필모그래피 최고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슈퍼히어로 장르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능력 설정은 단순히 악을 물리치는 상황만이 아니라 지극히 소소하고 한국적인 에피소드에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대단히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한국 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스펙터클, 인물의 캐리커처, 대사와 상황극 등 ‘하이파이브’는 좋은 상업 영화가 갖춰야 할 다수 요소를 충족하는 수작이다. 강 감독의 또 다른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신나는 디스코그래피가 함께함은 물론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