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민어탕과 호박젓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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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여름 내내 맹렬하던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밤과 새벽 풀숲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크게 번성한다. 폭염과 열대야가 지나가니,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달콤하고 슬픈 멜랑콜리한 줄기가 가슴 한쪽에 고인다. 염천이 이어지는 동안 딱히 먹고 싶은 게 없고 뭘 먹어도 미각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허기를 때우려고 겨우 얼음을 띄운 오이미역냉국 같은 반찬을 놓고 밥 한 술 뚝딱 뜨고 일어나곤 했다.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민어탕과 호박젓국

끼니때가 닥치면 뭘 먹을까 궁리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집밥 대신 찬 육수에 담긴 평양냉면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거나 이열치열이라고 땀 흘리며 바지락칼국수 한 그릇을 비운다. 복날엔 복달임한다는 핑계로 누룽지삼계탕을 먹은 것도 여름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혈당 문제로 수박 대신 여름 내내 황도복숭아를 두어 상자째 먹어 치우는 동안 여름은 끝난다. 여름철엔 보양식 대신 민어탕이나 백합탕을 먹는다. 집안 어른들은 민어탕 진국을 떠먹으며 지친 육신의 기력을 보충하곤 했다.

뽀얀 김 뿜어내는 민어탕 진국

중복 즈음 경남 통영 수산물업자가 보낸 민어가 아이스팩을 채운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도착한다. 크고 뼈가 굵은 민어는 먼저 회를 뜨고 남은 뼈와 살코기로는 탕을 끓인다. 내장 제거와 껍질 손질에는 칼을 쓰고, 뻣센 지느러미는 가위로 잘라낸다. 민어는 잘 씻어 잠깐 소금물에 담가둔다. 탕을 끓이려면 멸치 다시마 육수에 무, 대파, 양파, 청양고추, 홍고추 등속을 넣은 뒤 장류와 고춧가루를 풀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다. 민어는 들통에 넣고 진국이 우러나올 때까지 고아내는데, 들통 뚜껑이 덜컹이며 연신 뽀얀 김이 나와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주방 가득히 퍼진다.

더위가 물러나고 시도 때도 없이 식욕이 폭발하는 것은 신체활동지수가 높아지는 까닭일 테다. 요즘 갑자기 녹두지짐과 호박젓국, 소고기뭇국, 김치고등어찜 같은 게 간절해진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호박젓국 얘기를 했더니 어느 아침 아내가 호박젓국을 끓여냈다. 아시다시피 호박젓국 주재료는 애호박이다. 애호박은 볶음, 전, 찌개 따위에 두루 쓰이는 흔한 식재료다. 호박젓국 조리법은 간단하다. 애호박과 두부를 썰어 한 냄비에 담고 새우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춰 고춧가루 한 수저와 마늘 찧은 것을 첨가한 뒤 국물이 자작하게 끓여내면 끝이다. 찬바람이 날 때 새우젓과 고춧가루로 맛을 낸 호박젓국의 은근하고 칼칼한 국물을 목구멍으로 떠넘길 때 기분이 좋아진다.

이 슴슴하고 간 맞은 호박젓국

“윗집 태정이 어머니가 애호박 두 덩이를 안고/어둑어둑한 길 밟으며 내려와 놓고 간다./오늘 저녁엔 저걸로 호박젓국을 끓이자./싸락눈이 창호지 문을 싸락싸락 때리는 초겨울 저녁나절,/어머니는 쌀뜨물 받아 호박젓국을 끓이셨다./그 호박젓국이 어느덧 내 피와 뼈가 되었을 테다./썬 호박과 다진 마늘과 새우젓과 고춧가루들이 뒤엉켜/냄비 속에서 호박젓국이 끓는다./애호박이 제 속에 품은 향긋한 흙냄새와/진국을 기어코 토해낸다./이 슴슴하고 간 맞은 것을 앞에 놓고/뜨거운 밥 한 공기를 거뜬하게 비우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배부르자 멀리 혼자 있는 늙은 어머니를 떠올린다./밤하늘엔 집 나온 별들이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된똥 누는 미운 일곱 살짜리 아들 하나 슬하에 두고 싶은/밤의 적요가 사방에 꽉 차 있다./늙은 나이에 일곱 살짜리 아들이라니, 가망 없는 희망이다!/이젠 너무 늦었다, 나는 새초롬한 앵두나무 두 그루와/어여쁜 시냇물 소리나 키우는 수밖에 없다./신흥사 저녁 예불 알리는 범종 운 뒤/설악산 화채봉 능선 위로/지금쯤 보름 지난 둥근 달 떠올랐을 게다.”(졸시 ‘호박젓국’)

무엇을 누구와 먹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삶의 질을 규정하고 인간됨의 지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류학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이 질긴 고기를 연하게 조리해 먹는 화식이 발명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리처드 랭엄 영장류 연구자는 <요리 본능>에서 “날고기와 생야채만으로 구성된 식단이 익힌 음식으로 대체되면서 씹고 소화시키고 영양을 흡수하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던 덕분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동물과 다른 고등 생명체로 도약한 데는 불로 익힌 음식의 기여가 컸다는 증거일 테다.

영혼의 허기 달랠 '생명의 빵'도

우리 구강에 있는 혀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혀는 말하고 음식을 삼키는 일을 동시에 해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입은 음식과 말이 만나는 물리적 장소다. 다른 한편으로 동일한 기관인 혀가 음식과 말과 관련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배고픔을 달래려고 음식을 먹는다. 또 영혼의 허기를 해소하려고 책을 읽는다. 위장이 음식을 소화해 자양분을 공급하듯이 영혼의 위장은 지식과 정보를 소화해 영혼의 자양분을 만든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행위는 당면한 실존 문제다. 그것은 세속적이고 숭고하다. 영장류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음식을 구하는 과업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은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영혼의 위장을 위해 ‘생명의 빵’을 구하는 것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몸의 배고픔을 해결하느라 바쁜 탓에 영혼의 허기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유인원과 다를 바 없이 가난한 존재에 멈추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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