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지침·장비 착용 둔감
사고에 더 취약할수 밖에 없어
소통 안되는 외국인 산재 빈번
日스마트건설정책 도입 10년
자동화 목표로 현장인력 감축
위험작업 보조장비에 稅혜택
#지난해 6월 전북 남원시의 한 노인복지센터 공사 현장에서 87세 근로자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던 중 뒷바퀴가 토사에 빠지며 넘어져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통제구역 표식 미설치’로 보고됐지만, 고령의 노동자에겐 넘어짐 사고도 쉽게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이 격노한 포스코이앤씨 사고 사례에서도 지난 28일 60대 노동자가 지반을 뚫는 천공기에 끼여 숨졌다. 몸에 착공한 안전대 고리가 천공기로 빨려들어 발생한 안전사고다.
건설 현장이 늙어지면서 노동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청년층 유입이 끊긴 자리를 고령 노동자들이 채웠지만 이들을 위한 안전망은 부실하다. 사고가 잦아지자 현장에서는 차라리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는 추세인데 의사소통의 취약성으로 사고가 잦아지긴 마찬가지다.
국토안전관리원의 ‘2024년 건설사고정보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 현장 사망 사고 195건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떨어짐으로 103건(53%)에 달했다. 이어 깔림 32건(16%), 물체에 맞음 23건(12%), 끼임 14건(7%) 순이었다.
특히 떨어짐 사망 사고 103건 중 60대 이상은 56건으로 절반에 가깝다. 50대까지 포함하면 84건으로 전체 중 82%를 차지한다. 깔림 사고에서도 50대 이상이 29건으로 91%에 달하는 등 고령 근로자의 사망 사고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 대형 건설사 안전관리 담당자는 “아무래도 연세가 많은 어르신은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실시해도 집중력이 청년층에 비해 떨어지고 각종 안전장비 착용과 사용에 둔감한 편이 사실”이라며 “청년 인력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청년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 현장에서 일한 외국인 근로자는 22만9541명이었다. 이는 전체 건설업 근로자(156만400명)의 14.7%에 해당한다.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2020년 11.8%에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고용은 또 다른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안전수칙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신원 및 건강 상태가 잘 파악되지 않아 작업자의 위험 요소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경기도 수원시의 한 병원 신축 공사 현장에서는 외국인 근로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가 낙하물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달 충북 청주시의 한 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출근한 지 나흘 된 외국인 근로자가 질병에 의한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이송된 뒤 숨지기도 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국내 산업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사망자 수는 2021년 42명에서 2023년 55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이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외국인 근로자의 업무상 사고로 인한 상해 8434건 가운데 39.8%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전체 외국인 근로자 중 건설업 종사 비율이 12%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건설 현장은 외국인에게 유독 위험한 업종인 것이다.
또 사고 중 대부분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취약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안전관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중 절반 이상(54.9%)이 공사비 50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 현장에서 나왔다. 대부분 대형 건설사의 도급 계약을 맡은 하도급 업체가 진행하는 사업장이다.
우리보다 일찍 건설·산업 현장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 이같이 안전사고에 취약한 영세 건설사와 건설 현장에 무인화·스마트화를 추진해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출생·고령화로 건설업 신규 진입 근로자가 감소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 스마트 건설 활성화 정책(i-Construction)을 도입했다.
정책은 주로 국토교통성 직할 공사(토목)를 대상으로 민간에서 개발돼 있는 고위험 현장을 자동화·무인화 등으로 대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보조하는 신기술·장비를 도입하도록 추진됐다.
2024년에는 후속 조치(i-Construction 2.0)도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40년까지 건설 현장 투입 인력을 30% 감축하고 ‘무인화·탈현장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건설 현장 완전 자동화’다.
핵심은 스마트 건설장비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보조금 및 융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건설기계를 구입하면 해당 비용을 기준으로 법인세를 공제해주고 정책금융기관에서 장비 구입·운영 자금을 빌려준다. 관련 인력 육성을 위한 보조금도 지급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마트 건설은 현장 모니터링과 위험 작업에 사람 대신 장비를 투입하는 용도로 쓰인다”며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하고 현장을 안전규정대로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로 인한 공사비 증가를 사회적 비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