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트럼프의 ‘동맹 참교육’

11 hours ago 2

나토엔 ‘사랑꾼 구타男’ 악명 높지만
허세 들킨 이란엔 ‘양치기 소년’ 전락
만만한 동맹만 들볶는 ‘미치광이 전략’
韓 ‘북핵 관심’ 재촉 앞서 위험 대비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지난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는 일종의 숙제 검사 자리였다. 나토가 작년 어렵사리 합의한 ‘10년 내 국내총생산(GDP)의 5% 국방비 달성’ 목표(헤이그 공약)에 따라 그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였는데, 정작 유럽 정상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교육’을 칭송하는 기이한 경연장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유럽을 향해 온갖 불만을 쏟아냈다. “미군을 모두 철수시킬 수 있다”고 으름장도 놨다. 하지만 비공개 세션을 마치고선 “회의장에 엄청난 사랑과 단합이 넘쳤다”고 했다. 트럼프는 “그들이 ‘각하,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하더라. 다 큰 어른들이 한 말인데 보기 좋지 않냐”며 흡족해했다.

유럽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평화는 잠시일 뿐이다. 나토는 차기 정상회의를 알바니아에서 연다면서도 그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이제 연례회의를 격년제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와 덜 마주쳐야 동맹이 파탄 날 위험도 줄지 않겠느냐는 푸념과 함께.

트럼프의 막판 애정 표시를 두고선 마치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꼬집었다. 이처럼 트럼프는 △유럽에 체급을 키우라고 압박하며 위기 때만 돕는 ‘엄한 어른(tough-love adult)’ △직접 싸워주진 않고 간접 지원만 하는 ‘부재중 친구(absent friend)’ △이미 유럽을 버렸지만 집(나토)을 떠나진 않은 채 그 집을 지옥으로 만드는 ‘악질적 전 애인(toxic ex-partner)’ △러시아가 동쪽을 위협하는 사이 서쪽 그린란드를 노리는 ‘약탈자(predator)’ 사이를 오가고 있다.

어쨌든 트럼프는 쩔쩔매는 정상들을 보며 우쭐했을지 모른다. 사실 트럼프 2기가 내세우는 최대 성과라면 ‘대가도 없이 미국을 벗겨먹던’ 동맹들의 무임승차 관행을 바로잡은 것이다. 난폭한 협박의 결과일까. 유럽 국가들은 올해 국방비를 작년 대비 20%나 늘렸고, 그중 상당액은 미국산 무기 구입에 사용된다.

하지만 유럽이 당장 몸집을 키운다 한들 미국이 빠진 유럽 안보는 ‘두뇌와 신경망 없는 뼈와 근육’에 불과하다. 유럽은 지휘통제와 공중급유, 전력수송 등 핵심 능력을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콧대 높은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앞에선 고양이 앞 쥐 신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성과의 이면에서 트럼프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란 전쟁의 늪이다. 종전 양해각서(MOU)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연일 격렬한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그건 MOU에 대해 “이란의 완승, 미국의 굴욕”이라는 평가가 나올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미국이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에겐 지상군 투입을 포함한 확전의 의지가 없다. 바닥을 드러내는 미국의 탄약고 사정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이란이 그런 트럼프의 허세를 간파했다는 점이다. 이란이 미국의 경고를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트럼프식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이란 MOU 내용을 들여다보면 딱 8년 전의 북-미 싱가포르 합의가 겹쳐 보인다. 당시에도 ‘북한의 승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결국 8개월 뒤 하노이 노딜과 김정은의 핵 질주로 이어졌다. 지금 벌어지는 미국-이란의 대결과 타협, 재충돌의 악순환은 2017∼2019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북핵 드라마의 ‘더 거칠고 빠른 막장 버전’일 수 있다.

트럼프 2기 1년 반 동안, 세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럼프 발작’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충동적 의사결정과 비주류적 사고, 노골적 자기중심성은 예측 불허의 불확실과 혼돈을 불러왔다. 이를 두고 트럼프 충성파는 실제로 미친 게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믿도록 하는 계산된 전략, 즉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게 고도의 전략인지, 통제 불능의 본능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적표도 초라하다. 성과란 게 단기적 일시적 이득에 불과하고 그것도 만만한 동맹들을 쥐어짠 것뿐이다. 정작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에는 무력했고, 이란 전쟁에선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의 처지는 어떤가. 선제적인 국방비 증액과 전작권 조기 전환을 내세워 ‘모범 동맹’으로 불린다. 트럼프의 간헐적인 대북 관심을 자극하며 북핵 해결의 ‘페이스메이커’도 자임했다. 하지만 모범 타이틀이 청구서로 돌아오고 도우미 역할이 한국 패싱으로 나타날 경우 그 비용과 위험에 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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