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집값은 못 잡고 주거 사다리만 끊겼다

11 hours ago 3

이상훈 경제부장

이상훈 경제부장
살면서 집을 두 번 사 봤다. 첫 집은 경기도의 소형 아파트였고, 몇 년 뒤 서울 인근 위성도시로 평수를 넓혀 갈아탔다. 형편이 빠듯해 전세를 끼고 수억 원의 대출도 받았지만, 맞벌이로 돈을 모아 전세금을 돌려주고 ‘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도, 3억 원 넘게 대출을 받는 것도 어려워졌다. 부동산 규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지금 사회 초년생이었다면 과연 집을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 뜻대로 안 움직인 부동산 시장

강도만 놓고 보면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손꼽힐 정도로 강하다. 지난해 6월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서울 전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으로 확대했다. 전세를 낀 주택 거래는 사실상 막았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4년 만에 부활시켰고, 보유세 강화를 예고했다. 일부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3억 원까지 낮췄다.

하지만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고 시장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강남권 진입이 어려워진 실수요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금관구’(금천 관악 구로)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들썩였다. 시장 불안은 서울 전역과 수도권 주요 지역으로 확대되며 풍선 효과가 현실화했다.

지난해 대출 규제로 이미 15억∼25억 원 주택은 4억 원, 25억 원 초과 주택은 2억 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이번 주담대 3억 원 제한은 6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던 15억 원 이하 중저가 실수요자에게 직격탄이다. 게다가 지방은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도 같은 규제를 적용받는다. 사실상 은행 돈으로 집을 사지 말라는 말이다. 현금이 많은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미래 소득을 담보로 내 집을 마련하려던 성실한 청년과 중산층의 주거 사다리는 끊겼다.

세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부활한 데 이어 비거주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고가 주택 보유세 강화를 검토 중이다. 정부는 버티면 더 손해인 상황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지만, 버티는 사람의 부담을 높인다고 해서 매물이 시장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보유세를 높인다면 양도세는 낮춰야 매물이 시장에 나와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숨통이 트이지, 두 세금을 동시에 강화하면 매물이 잠겨 거래가 위축된다.

최근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코로나19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 서울 및 수도권의 만성적인 공급 부족, 일자리와 교육의 수도권 집중, 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고소득자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것이다. 대출과 세금으로 가격만 누르려 하니 효과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 공급까지 막히면서 부동산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육사 및 경마장 이전 같은 장기 프로젝트보다 당장 사람들이 원하는 서울 핵심 지역의 재건축 재개발 같은 공급책이 절실하다.

토론회, 국민 목소리 듣는 자리여야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주재하는 부동산 공개 대토론회는 지난 1년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돼야 한다. 정부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대출을 잠그고 거래를 동결시키면 “지금 아니면 영영 못 산다”는 조바심만 키울 수 있다. 비정상적으로 오른 집값은 안정돼야 한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고 거래를 원활하게 터 주며 예측 가능한 세금 정책으로 집이 시장에 충분히 나온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확인됐다. 이제는 규제를 더하는 정책이 아니라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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