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방랑’ 끝낸 佛드레퓌스 동상[횡설수설/이진영]

11 hours ago 2

프랑스인들에게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사건은 양가(兩價)적 의미를 갖는다. 독불전쟁 패배 후 악화된 민심을 달래려 군부가 유대계 육군 대위를 독일 간첩으로 몰고 간 부끄러운 마녀사냥이자, 국가 권력과 반(反)유대주의 광기에 맞서 개인의 무고함을 밝혀낸 양심 세력의 자랑스러운 승리다. 그래서일까. 드레퓌스를 기리는 동상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40년이 걸렸다. 그가 1906년 무죄 선고를 받고 복권된 지 120년 만이다.

▷드레퓌스 동상이 완성된 건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시절인 1985년.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정부는 드레퓌스 사건을 인권과 정의의 상징으로 기리고자 유대인 출신 조각가에게 의뢰해 높이 3.5m의 청동상을 제작했다. 드레퓌스가 군복 차림에 부러진 칼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1894년 당시 군 법정이 드레퓌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하자 군은 강등식을 열어 계급장을 뜯어내고 군도를 부러뜨렸다. 부러진 칼은 국가 권력이 꺾어버린 정의를 바로 세운 역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드레퓌스 동상은 원래 그의 강등식이 열렸던 사관학교 교정에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군 수뇌부의 거부로 무산됐다. 군의 치부를 시각적 기록물로 전시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후 다른 몇몇 후보지에서도 난색을 표시하면서 루브르 미술관 옆 튈르리 공원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드레퓌스 사건 100주년이던 1994년 그가 수감됐던 교도소 근처 공원으로 옮겨졌다. 진보적 공화파인 ‘드레퓌스파’와 군과 가톨릭이 주도한 보수적 ‘반(反)드레퓌스파’ 간 갈등의 앙금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의 후손들은 “외진 곳에 두어 조용히 잊혀지길 바란 것 같다”고 유감을 표했다.

▷드레퓌스 동상이 ‘떠도는 기념상’이란 별칭으로 파리 시내 곳곳을 옮겨 다니는 동안 복제품 두 점이 파리 유대인 예술사 박물관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설치돼 원본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결국 원본은 드레퓌스 국가 기념일의 첫 기념식이 열린 12일 그가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대법원에 영구 설치됐다. 이로써 드레퓌스 사건은 군부의 권력 남용을 사법 절차로 바로잡아 사법적 정의를 회복한 상징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드레퓌스는 1906년 무죄 선고를 받고 복권돼 중령으로 제대했다. 프랑스 정부는 최고 영예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고, 지난해엔 그의 복권일인 7월 12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같은 해 11월 그를 준장으로 승격시켜 사후 90년 만에 별을 달아줬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드레퓌스의 날은 정의와 진실이 증오와 반유대주의에 맞서 승리한 날”이라고 했다. 드레퓌스 동상의 방랑은 국론 분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의 공식적 복권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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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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