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희 "긴장감까지 즐긴 대회…매 순간이 행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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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희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베이코스에서 열린 숍라이트 클래식 1라운드 경기 도중 웃고 있다. 그는 8일 막을 내린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이일희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시뷰베이코스에서 열린 숍라이트 클래식 1라운드 경기 도중 웃고 있다. 그는 8일 막을 내린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숍라이트 클래식(총상금 175만달러) 최종 3라운드를 앞둔 지난 8일. 이일희(사진)는 오전 4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난생처음 해보는 단독 선두 최종 라운드에 많이 긴장하고 있긴 하구나 싶었어요. 언제 다시 경험할지 모르니 이마저도 즐겨보자고 생각했죠.”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탓에 전반에 아쉬운 스코어를 냈지만 중반부터 페이스를 회복하며 1타 차 값진 준우승을 거뒀다. 경기를 마친 그의 얼굴에는 우승을 놓쳤다는 아쉬움 대신 최고의 골프를 쳤다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세계랭킹은 1426위에서 218위로 뛰어올랐다.

기적 같은 플레이로 한 편의 동화를 만든 이일희를 12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지난 2주간 대회를 치르느라 밀린 레슨을 하고, 새 사업도 준비하며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12년 만의 첫 우승 도전

이일희 "긴장감까지 즐긴 대회…매 순간이 행복했죠"

이일희는 골프 팬에게 한동안 잊힌 이름이다. 2010년 LPGA투어에 진출해 2013년 퓨어실크 바하마 오픈에서 첫 승을 거뒀다. 꾸준히 20~30위권을 유지하던 그는 어깨 부상으로 투어 활동에 타격을 입었고, 2018년 시드를 잃었다.

역대 우승자 자격으로 매년 한두 개 대회에 출전하던 그에게 올해 6월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5일 열린 US여자오픈 예선을 거쳐 출전권을 따냈다. 커트 통과는 하지 못했지만 메이저 대회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고 한다.

행복감 덕분에 숍라이트 클래식을 앞두고 유독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았다. 그는 1라운드에서 보기는 1개로 막고 버디 9개를 몰아치며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예상치 못한 선두권은 선수에게 부담감과 악재로 작용하기 일쑤지만 이일희는 “친구와 가족의 연락에 모두 답장을 하고, 제 스코어를 자랑했다”고 귀띔했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선 최종 라운드, 3번홀(파5)에서 잘 친 공이 없어지는 불운에 무너질 뻔하기도 했다. 이일희는 “‘이게 골프지’라며 털어냈다”며 “불운이 저를 무너지게 두지 않았고,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후반에 페이스를 회복한 이일희는 제니퍼 컵초(미국)를 1타 차이로 바짝 추격했다. 마지막 18번홀, 4m 이글퍼트가 아쉽게 홀을 스치면서 우승을 놓쳤지만 컵초에게 진심 어린 축하와 미소를 보냈다. 여전히 그 퍼트가 생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일희는 “저 역시 한 명의 일반 골퍼”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이렇게 할걸’이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합니다(웃음). 하지만 그때 그 라이를 본 이유가 있었고 최선을 다했기에 거기에 머물러 있지는 않아요.”

◇사업가로 새로운 인생

골프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그이기에 부상으로 필드를 떠나야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을 정도로 절망했다. 이일희는 휴학 중이던 학교(성균관대)로 돌아갔다. 스포츠과학 전공이던 그는 철학 수업, 교육학 개론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30대 초반의 새내기는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갔다. 그는 “서른 살이 넘는 나이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막막했지만 제 인생의 방향성을 잡아준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대학 졸업 후 금융 포럼 관련 일도 했다. 하지만 100일가량 일한 뒤 ‘내 길은 역시 골프’라는 사실을 깨닫고 LPGA투어 클래스A 자격을 땄다. 레슨프로로서의 이일희는 “골프에 속지 않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골프가 나를 망가뜨리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을 거예요. 쉽고 단순하게 접근하면서 유혹을 쳐내 골프를 즐겁게 치는 법을 알려드리려고 노력해요.”

새로운 도전도 준비하고 있다. 오는 8월께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SUPAR’라는 이름의 실내 스튜디오를 열 예정이다. “단순한 연습장이 아니라 내 골프를 정확하게 알고 골프의 재미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추가 출전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고민 중이다. “우선은 좋은 기억이 많은 에비앙 챔피언십에 나가려 해요. 매 순간을 즐기며, 그 안에서 열심히 싸워볼게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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