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경규가 약물 운전 혐의로 입건된 가운데 그가 복용한 공황장애 약이 운전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목이 쏠린다. 최근 약물 운전으로 인한 면허 취소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 정확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규는 지난 2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경규는 지난 8일 오후 2시 5분쯤 강남구 한 건물 주차장에서 자신의 승용차와 차종이 같은 다른 사람의 차를 몰고 자신의 회사로 갔다. 이후 해당 차주는 차량 절도 의심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주차관리 요원이 차량을 헷갈려 이경규에 잘못 전달한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은 이후 이경규를 상대로도 조사를 벌였는데, 음주 측정 결과 음성이 나왔지만, 간이시약 검사에서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도 양성 결과를 회신하며 피의자로 전환됐다.
이경규는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와 "공황장애 약을 먹고 몸이 아플 때는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먹는 약 중에서 그런 계통의 약이 있다면 운전을 자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이경규는 공황장애 약 외에 감기약을 추가로 복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규는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일 공개된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갓경규'에서도 "KBS 2TV '남자의 자격' 호주 퍼스 횡단 여행을 하다 처음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며 "하루에 10시간씩 달리는데 아무것도 안 보인다.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고, 울면서 차에 쓰러지고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며 "가슴이 답답하고 죽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이) 정신과를 가보라 해서 가니까 약을 지어주더라"며 "그 약을 먹으니까 편안해졌다"며 10년째 공황장애 약을 복용 중이라 밝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운전자들 사이에선 공황장애 약을 먹은 뒤 운전대를 잡아도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됐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의 운전을 금지한다. 처방 약이라도 집중력·인지능력 저하로 정상적 운전이 어려운데도 운전하면 약물 운전 혐의가 성립한다.
지난 2019년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 건수는 57건이었는데, 5년 만인 지난 2023년에는 113건으로 두 배로 늘었다. 내년 4월부터는 약물 운전 처벌 수준이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되는데, 이는 음주운전 가중 처벌과 동일한 형량이다.
하지만 약물 운전 단속 규정이 '정상적 운전' 여부라는 점에서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로 알려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 원장은 이경규 사건과 관련해 "정신과 약물 복용자 전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될 경우, 정신과 약물 복용자 전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할 수 있다"며 "'정신과 약을 먹으면 무조건 위험하다'는 인식은 가뜩이나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높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치료를 주저하게 만들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소신을 전했다.
치료제 종류에 따라, 환자 수용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정상적인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를 규정하는 것에 어려움도 있다. 다만 공황장애 치료제는 크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로 나뉘는데, 이 중 항불안제가 졸음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