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가 프랑스 북부 랭스에 공장을 지은 2001년 때다. 조 후지오 당시 도요타 사장과 외빈으로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가 준공식에 참석했다. 프랑스의 한 신문에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소재로 만평이 실렸다. 조스팽이 도요타 사장에게 프랑스가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했다고 자랑삼아 얘기한다. 그러자 도요타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하루가 24시간인데 어떻게 35시간을 일할 수 있는가요?”
도요타 사장은 설마 주당 근로 상한이 35시간이겠냐는 생각에서 그리 되물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실한 근로자들로 꼽히는 도요타 임직원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숫자다. 주 35시간제는 프랑스 좌파와 노동계에 상징적인 제도다. 2000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때 동거 정부 총리인 사회당 출신 조스팽 행정부에서 도입해 지금까지 법정근로시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기존에도 충분히 적은 39시간에서 근로시간을 더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임금 삭감은 없다. 반짝 효과가 있는 듯하더니 일자리 창출에는 별 소용이 없고, 기업 부담만 늘리는 폐해를 낳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노동법규”라고 했다.
정권 교체기마다 주 35시간제가 화두가 됐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제도의 폐지를 내걸고 당선됐으나 노조 반발에 가로막혔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자기 당 정책임에도 실정을 인정하고 폐지를 시도했으나 이 역시 좌절됐다. 이때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맡고 있던 이가 지금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으로, 그가 사회당과 결별한 계기 또한 주 35시간제였다.
유럽 빅3 국가 프랑스를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이 주 35시간제다. ‘더 놀고, 덜 일하면서, 똑같이 받자’는 몹쓸 풍토가 여기서 비롯됐다. 법정근로시간은 주 35시간이지만, 기업과 근로자들은 대개 주 39시간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데, 법정근로시간 초과분에 대해선 연간 15~20일의 휴가를 준다. 법정 휴가 25일을 합하면 프랑스 근로자들의 연간 휴가 일수는 40~45일. 주말을 끼면 한 번에 두 달가량의 휴가가 가능하다. 얼마 전 붕괴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 정부가 긴축안에서 공휴일 이틀을 줄여 생산성을 높이자고 했다가 거부 당했다. 국제신용평가사가 국가 신용등급을 내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까지 거론되는 위기 상황에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지, 왜 나더러 덜 쉬라고 하느냐”고 하는 게 지금의 프랑스다.
프랑스의 복지 지출은 복지 천국 북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비용이 30%를 웃돌고, 그 절반은 연금 지출이다. 프랑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0%대로 50%대인 독일보다 훨씬 높다.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나라 중 생애 소득 대비 이 정도의 연금을 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의 연금 부담을 가중한 데는 연금의 절대 금액은 물론 연금 지급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엔 프랑스 첫 사회당 출신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미테랑 시절인 1983년 정년을 65세에서 60세로 확 낮추면서 연금이 급격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사르코지 때 62세, 마크롱 정부 들어서 64세로 높였지만, 여전히 유럽 국가 중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프랑스병은 이렇게 요약된다. 국민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나라에 돈이 없는데, 국가에서 받는 혜택은 늘면 늘었지 조금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이기심이다. 복지는 성장이 동반됐을 때 제 기능을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0%대, 심지어는 역성장하는 나라에서 재정 지출을 유지하면 펑크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국가 신용도 하락은 재정 이자 부담 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노란봉투법 이후 한국 노동계의 슬로건은 주 4.5일제로 옮겨 갔다. 정부도 맞장구치는 분위기다. 정치적 속내를 생산성 같은 경제 논리로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면 실상은 명확하다. 그 엄청난 격차는 근본적으로 근로 의욕과 근로 윤리에 기반한다. 지금 보고 있는 대로 프랑스는 없다. 그런데 왜 그 길을 따라 가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