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로 받을래요"…전세 손님 줄 서자 집주인 '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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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스1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스1
"최근에 손님과 전세 물건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매매도 아니고 전세로 나온 물건을 보겠다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5~6개 팀이 줄을 서 있는 건 처음 봤어요. 그런데 정작 두 팀이 서로 계약하겠다고 나서니까 집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전세 대신 월세로만 놓겠다고 통보하더라고요." (서울시 광진구 A 공인 중개 대표)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시세보다 1억원가량 저렴하게 나온 전세 매물을 보기 위해 평일임에도 대기자가 몰린 것입니다. 해당 매물은 타워형 저층인데다 내부 상태가 훌륭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집을 본 이들 중 두개 팀이 즉시 계약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전세 대기자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본 집주인이 돌연 "전세는 안 놓겠다. 월세로만 계약하겠다"고 조건을 바꾼 것입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철저한 '임대인 우위'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매물 1건에 계약을 원하는 세입자들이 몰리자, 전세를 거두고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의 변심이 속출하는 모습입니다. 전세난이 월세화 속도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5일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 1만8357건 중 월세 계약이 9071건으로 전체의 49.4%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평균 월세 비중이 42.6%였던 것과 비교하면 월세 비중이 6.8%포인트 상승한 것입니다. 신규 계약만 따지면 월세 비중은 더욱 높아집니다. 이 기간 서울 전·월세 신규 계약 9205건 중 월세 계약은 4977건으로 54.1%입니다.

이처럼 빠르게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될 수 있던 배경에는 '전세 가뭄' 현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전·월세 물량은 3만426건으로 1년 전(4만6450건)과 비교해 34.5% 줄었습니다.

여기에 내년까지 이어질 신규 입주 물량 감소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R114가 공동 발표한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은 2만7158가구, 2027년 예상치는 1만6975가구다. 이는 연간 서울 적정 수요량으로 거론되는 4만8000 세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세난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전세 매물을 거둬들이고 고액 월세로 전환하는 진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공급 부족이 임대인의 '배짱 영업'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토대가 된 셈입니다.

실제로 서울시 강서구에 아파트를 보유한 40대 직장인 B씨는 실거주 후 월세로 임대차 계약할 계획입니다. B씨는 "실거주 후엔 월세를 놓을 계획"이라며 "보유세 부담은 커지는데 전세금은 올려봐야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차라리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 현금을 받는 게 실익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임대인 C씨도 "예전에는 전세금이 모자란 경우 어쩔 수 없이 월세를 끼었지만, 지금은 집주인이 먼저 월세를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전세 손님이 줄을 서 있으니 세입자가 제안을 거절하면 새로운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월세화 현상은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는 금리에 따라 전·월세 비중이 널뛰기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아파트 전세 공급 부족'이라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최근에는 금리가 비슷하게 유지되는 상황임에도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 전세 매물은 늘어나지 않다 보니 수급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전셋값이 오르는데, 전세보증금을 한꺼번에 크게 올릴 수 없으니 집주인들이 일부를 월세로 받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주거비 부담이 계속 커지면 내 집 마련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수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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