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김판곤 감독이 울산 HD를 이끌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상대는 리그 3연승 중이었던 수원 FC였다.
김 감독이 경기 전 이렇게 말했다.
“시원섭섭하지만 괜찮다. 울산 지휘봉을 잡고 1년 동안 아주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K리그1 정상에 올랐고,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을 경험했다. K리그를 대표해 ‘팀 K리그’를 이끌어보기도 했다. 좋은 경험을 아주 많이 했다. 구단에 감사한 게 많다. 구단의 배려로 고별전도 치른다. 팬들에게 인사드릴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고별전을 치르는 감독 몇 없다.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 7월 28일 울산의 제12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김 감독의 말처럼 그는 울산의 K리그1 3연패이자 팀 통산 5번째 우승을 일궜다. K리그 최고 명가로 꼽히는 울산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맛본 인물은 김 감독이 유일하다.
문제는 올 시즌이었다.
울산은 2일 수원 FC전 이전까지 공식전 10경기 무승(3무 7패)이었다. 울산이 K리그1 23경기 8승 7무 8패(승점 31점)로 7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클럽 월드컵에선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클럽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치른 광주 FC와의 코리아컵 8강전에선 0-1로 졌다.
김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울산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다.
울산의 부진이 깊어질수록 ‘김판곤 나가’란 외침이 커졌다. 김 감독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쉽지 않은 일상이 이어졌을 것이다.
김 감독은 “‘하늘의 뜻’이라고 본다”며 “신앙심이 있어서 힘든 순간에도 최대한 버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구단, 팬 등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도전의 과정에서 내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부족한 내게 기회를 주신 구단, 큰 사랑을 주신 팬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울산 고별전에서도 웃지 못했다.
안 풀리는 팀의 전형이었다.
울산은 이날 조현택의 환상적인 중거리 골로 앞서갔다. 싸박에게 동점골을 헌납한 뒤엔 고승범이 올해의 골로 손색없는 오버헤드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울산은 2-3으로 역전패했다.
말컹의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에 이은 득점은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고, 말컹의 높이를 활용한 헤더는 골대를 때렸다.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수원 FC전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한 해 동안 내게 기회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 울산 시민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많은 분이 응원해 주시고 힘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 성원에 보답하지 못한 건 정말 죄송하다. 반등을 일구지 못하고 여러분 곁을 떠나게 돼 송구하다. 우리 울산 축구단이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감독은 마지막까지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힘썼다. 김 감독에게 경기 후의 솔직한 감정을 물었다.
김 감독이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선수들이 어떤 경기인지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다 보니 많이 지쳐있다는 게 보였다. 지금 필요한 건 회복인 듯하다. 빨리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마음은 있는데 몸이 안 따라가는 게 보여서 안타까웠다. 선수들이 빨리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상 응원하겠다.”
김 감독은 향후 거취에 관해선 말을 아꼈다. 중국 몇몇 매체에선 김 감독의 중국 슈퍼리그행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김 감독은 “몇 달 동안 상당히 힘든 나날을 보냈다”며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어 “홍콩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날 계획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겠다. 반성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갖겠다. 천천히 다시 시작할 생각”이라고 했다.
기자회견장을 떠나는 김 감독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울산=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