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로또’ 같은 사이…안 맞으니까” 이 공식 알면 달라질 수 있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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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없는 부부는 없다. 다만 이 갈등을 어떻게 ‘잘’ 싸워서 다루느냐의 문제다. 과학적 연구로 밝혀진 행복한 부부의 갈등 관리법을 알아보자. 게티이미지

갈등이 없는 부부는 없다. 다만 이 갈등을 어떻게 ‘잘’ 싸워서 다루느냐의 문제다. 과학적 연구로 밝혀진 행복한 부부의 갈등 관리법을 알아보자. 게티이미지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그만 좀 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네 성격이 문제지.”

이혼 직전에 놓인 부부 갈등을 다루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하는 부부마다 배우자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뱉어 내기 바쁘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경멸하거나 대화를 회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감정이 상하고 더 독한 말을 쏟아 내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다수 이혼 사유가 ‘성격 차이’라고 하지만 사실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는 없다.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성격 차이는 이혼과 무관하다고 한다. 행복한 부부나 불행한 부부 모두 서로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른 갈등을 겪는다. 다만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의 결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부 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가트맨 미국 워싱턴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갈등 유무나 그 내용 자체보다는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잘 싸우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부 갈등 주제 가운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약 31%에 불과하고, 나머지 69%는 기질이나 자란 환경 등이 달라 계속 반복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이 아닌 ‘관리’를 잘하려면 몇 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가트맨 교수가 일명 ‘사랑 연구소(Love Lab)’에서 약 50년간 백인, 흑인, 동양인, 다문화 부부 3000여 쌍을 연구해 밝혀낸 ‘행복한 부부의 갈등 관리법’을 살펴보자.

존 가트맨 교수(오른쪽)와 가트맨 연구소를 공동 창립한 그의 아내 줄리 슈워츠 가트맨. 앞서 두 번의 이혼을 겪은 가트맨 교수는 1980년대에 ‘사랑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부부 관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트맨 연구소’ 홈페이지

존 가트맨 교수(오른쪽)와 가트맨 연구소를 공동 창립한 그의 아내 줄리 슈워츠 가트맨. 앞서 두 번의 이혼을 겪은 가트맨 교수는 1980년대에 ‘사랑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부부 관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트맨 연구소’ 홈페이지
● 부부 대화 3분만 들어봐도 이혼 가능성 예측

가트맨 교수는 1983년 부부 79쌍의 대화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부부가 15분씩 그날 겪은 일상적인 주제의 대화, 평소 갈등을 겪는 문제에 관한 대화, 즐거운 주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4년 뒤 이들을 다시 연구소에 초대해 같은 방식으로 한 차례 더 대화하는 것을 녹화했다. 특수 분석 장비를 통해 각각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내용, 표정, 태도 등을 부정적 반응과 긍정적 반응으로 세밀하게 나눴다. 이와 함께 대화할 때의 심장 박동, 피부 전도도(EDA) 변화를 비롯해 감정에 따른 생리학적 변화도 기록했다.

그로부터 14년 뒤 이 부부들의 근황을 추적해 보니 79쌍 가운데 21쌍이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시기에 따라 결혼 7년 내 이혼한 부부를 조기 이혼 부부로, 결혼 7~14년에 이혼한 부부를 후기 이혼 부부로 나눴다. 이들의 대화를 분석해 보니 이혼한 시점에 따라 헤어지는 부부의 특징을 추릴 수 있는 단서들이 있었다.

◆ 관계를 망치는 4가지 독(毒)

·비난: 사소한 불평을 말할 때 상대 성격이나 인격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 “청소도 안 하고 당신은 항상 무책임해”(‘항상’ ‘도대체’와 같은 표현이 주로 등장)

·경멸: 상대를 열등하다고 여기며 빈정거리기
→ “돈이나 잘 벌어 오면 말을 안 하지”

·방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잘못을 상대에게 돌리기
→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야?”

·담쌓기: 대화를 회피하는 모든 말과 행동
→ 방으로 들어가기, 휴대전화 꺼놓기 등

조기 이혼 부부는 갈등을 겪는 문제 대화에서 가트맨 교수가 ‘관계를 망치는 4가지 독’이라 명명한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소통 단절)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가트맨 교수는 특히 조롱하고 깔보는 태도 때문에 경멸이 이혼을 가장 강력하게 예측하는 요소라고 봤다.

훗날 대상을 바꿔 같은 연구를 반복하니 이런 4가지 독을 포함한 대화 패턴을 드러낸 부부는 결혼 후 평균 5년 뒤에 갈라설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체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서로 공격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는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을 알아두자. 게티이미지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는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을 알아두자. 게티이미지

신혼부부 124쌍을 6년 동안 추적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갈등 상황에서 4가지 독 대화 패턴이 3분 안에 나타나는 부부는 평균 6년 이내에 이혼할 가능성이 컸다. 주로 아내가 먼저 남편을 비난하고, 남편이 이에 방어적으로 나오면서 갈등이 격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격렬하게 싸운 부부만 이혼에 이른 것도 아니다. 후기 이혼 부부들은 일상이나 갈등 대화를 나눌 때 서로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특히 적었다. 아내가 어린 아들이 심부름을 잘 해낸 이야기를 신나서 꺼냈지만, 남편은 무관심하거나 화제를 바꾸는 식이다. 감정싸움이 잦은 조기 이혼 부부들과 비교해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커지며 정서적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게 문제다. 오랜 시간 결혼 생활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커지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서서히 쌓은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정서적 이혼’ 상태에서 법적 이혼 상태로 진행된다. 부정적인 대화가 많이 오갈 때뿐 아니라 긍정적인 대화가 적을 때도 이혼 위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한 번 화내면 다섯 번 손 내밀어야

싸우더라도 이혼하지 않고 잘 살아가는 부부들의 대화에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마법의 비율이 숨어 있다. 긍정적 상호작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싸울 땐 먼저 손 내밀기 쉽지 않다. 이럴 땐 ‘5 대 1’을 기억하자.

원래 수학을 전공한 가트맨 박사는 부부의 갈등 상황 대화를 분석한 결과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 상호작용의 황금비율이 5 대 1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언쟁이 오갈 때 배우자에게 부정적 반응(화, 짜증, 반발, 무시 등)을 한 번 보였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반응(수긍, 감사, 배려 등)이 5번은 있어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비율이 지켜져야 갈등이 격화되지 않고 화해 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미소, 칭찬, 공감, 유머를 비롯해 배우자 어깨를 감싸거나 등을 쓰다듬는 등 화해의 모든 제스처가 긍정적 반응에 해당한다. 비록 지금은 다투고 있더라도 상대가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고, 내 감정을 배우자가 이해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줄 수 있어서다. 다만 유머를 가장해 빈정거리거나 조롱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화, 짜증 등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땐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다섯 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불쑥 말을 거칠게 꺼내기 전에 이 점을 떠올리면 좀 더 온화한 태도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

배우자에게 화, 짜증 등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땐 이를 상쇄하기 위해 다섯 번 화해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 불쑥 말을 거칠게 꺼내기 전에 이 점을 떠올리면 좀 더 온화한 태도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게티이미지

이 비율이 5 대 1에서 1 대 1.25 수준까지 내려간 커플은 멀지 않아 이혼할 확률이 커졌다. 다만 이 비율은 갈등 상황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일상 대화 중엔 20 대 1까지 비율이 올라간다. 싸울 때 다섯 번 화해를 시도하는 게 평상시 스무 번만큼이나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다. 평소에도 20 대 1의 비율을 지키려면 조금씩, 자주, 꾸준한 노력을 들여 배우자에게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

단 한 번의 부정적 행동을 만회하는 데 이다지도 큰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에게 부정성이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주의를 집중하고, 각성하는 특징을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한다. 긍정적 정보는 가볍게 여겨도 생존에 큰 타격이 없지만, 부정적 정보는 작은 것도 경계해야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기에 생겨난 특성이다. 그래서 부정적 정보를 더 세밀하게 살피게 된다.

오랫동안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에겐 5 대 1 황금비율도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아시아 최초로 국제 공인 ‘가트맨 부부 치료사’ 자격을 취득한 최성애 HD행복연구소 소장은 “갈등이 오래된 부부는 ‘부정적 감정의 밀물 상태’에 빠져 있어 작은 일에도 과거부터 쌓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감정이 자꾸 비집고 나올 땐 자구 노력보다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게 안전하다. 최 소장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치료 과정인 ‘사랑의 지도 그리기(배우자의 내면세계 파악하기)’와 ‘장점 50개 찾기’ 같은 작업을 시작으로 생각보다 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 사소한 말 걸기가 행복 좌우

갈등을 겪을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가트맨 교수는 이를 ‘연결 시도(bids for connection)’라고 했다. ‘정서적 접근 시도’ 또는 ‘친밀감의 시도’라고도 하는데, 먼저 말 걸기라고 생각하면 쉽다.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보다 평상시 사소한 말 걸기가 부부 관계에서 훨씬 중요하다.

신혼부부 130쌍의 일상 대화를 녹화해 분석한 결과, 둘 중 하나가 언어, 표정, 몸짓 등으로 상대방과의 연결 시도를 할 때 배우자가 이에 얼마나 응답하는지에 따라 부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기 꽃 좀 봐”라는 말에 가리키는 곳을 보며 호응하는 부부와 무관심한 부부의 최후는 달랐다.

6년 뒤 이 130쌍을 추적해 보니 신혼일 때 상대의 연결 시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33%였던 커플은 이혼했다. 반면 잘 사는 커플은 연결 시도에 대한 긍정적 응답률이 87%나 됐다.

최 소장은 “‘오늘 날씨 좋다’ ‘배고파’ 같은 연결 시도에는 ‘놀러 가고 싶다’ ‘밥 먹자’처럼 원하는 것을 돌려 말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때가 많다”며 “배우자가 이를 알아차리고 잘 반응해 줄 때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부부의 긍정적인 ‘정서 통장’이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리 레이스 미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한 ‘파트너(배우자) 반응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반응성이란, 배우자가 나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돌보며 지지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지 주관적으로 느끼는 정도다. 반응성이 높은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의 생각에 관심을 보이며,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려 한다.

◆ 무심한 배우자의 특징

·내 이야기를 무시한다
·내 감정이나 걱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무시한다
·내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 걱정이나 스트레스에 대해 배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 다정한 배우자의 특징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내 생각과 느낌에 관심을 보인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고, 반응한다
·내 우려와 걱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인지된 파트너 반응성 및 무감각성(PRI)’ 척도-


당연히 파트너 반응성이 낮으면 행복과 멀어진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 반응성은 스트레스 조절 능력뿐 아니라 10년 뒤 행복감과 조기 사망률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의 말, 감정, 걱정거리 등에 끊임 없이 관심 가져 주는 배우자의 ‘반응성’은 행복감을 크게 좌우한다. 게티이미지

서로의 말, 감정, 걱정거리 등에 끊임 없이 관심 가져 주는 배우자의 ‘반응성’은 행복감을 크게 좌우한다. 게티이미지

다만 모든 연결 시도에는 부드러움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 퇴근했는데 집이 어질러진 것을 보고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생각해 보자. 최 소장은 “‘아휴, 집이 이게 뭐야’라고 시작하면 갈등으로 이어질 뿐”이라며 “‘집에 왔는데 어질러져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적어도 거실만큼은 깨끗하면 좋겠어’ 같이 부드럽게 시작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 상황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다툼과 단절에 빠질 수 있지만, 온화함을 잃지 않고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핵심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번 주 기사를 끝으로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는 당분간 휴재에 들어갑니다. 2022년 7월부터 지난 3년 동안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다가가는 기사를 쓰기 위해 기사 하나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더욱 깊어진 내용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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