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성곽마을… 골목길 전체가 럭셔리 호텔로 탈바꿈[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7 hours ago 4
한국이나 일본이나 농어촌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을 겪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심각한 지역을 인구소멸 위기도시라고 부른다. 일본 시코쿠(四國)섬 에히메(愛媛)현의 한적한 소도시 중에는 오래된 민가를 ‘마을 분산형 호텔’로 운영하거나, ‘에너지 제로(0)’ 마을을 만들어 색다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과 애니메이션, 문화재에 담긴 스토리를 새롭게 해석해 내고 있는 에히메현 소도시 여행을 다녀왔다.

● 버려진 민가를 분산형 마을 호텔로

에이메현 마쓰야마(松山)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오즈(大州)시는 ‘이요(伊予) 지방의 작은 교토(京都)’로 불린다. 세토내해(瀬戸内海)로 흘러드는 히지카와(肱川)강 유역에 자리 잡은 성곽마을로 메이지시대 목랍(木蠟), 종이, 실크 무역이 번창한 곳이다. 목랍은 옻나뭇과 나무 열매에서 나온 식물성 왁스. 불을 켜는 초와 화장품 재료로 쓰이던 목랍을 전 세계에 수출해 큰돈을 벌었던 상인들 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점차 목랍 산업도 쇠퇴하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오즈에는 파란색 천으로 대문을 덮어 놓은 빈집이 늘어만 갔다.

일본 에히메현 오즈시 성곽마을의 비어 있는 오래된 가옥 31채를 활용해 만든 ‘분산형 마을호텔’.

일본 에히메현 오즈시 성곽마을의 비어 있는 오래된 가옥 31채를 활용해 만든 ‘분산형 마을호텔’.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오즈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결단을 내렸다. 고민가(古民家)로 불리는, 오래된 집 31채를 분산형 마을 호텔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투숙객들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에 물고기가 살고 있는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호텔 시설을 이용한다.

투숙객들은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에 물고기가 살고 있는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호텔 시설을 이용한다.
보통 호텔은 수직형 건물로 지어지지만 이곳 고민가 호텔은 마을 전체에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다. 첫 번째 집에서 체크인 하면 뒷집은 객실이다. 저녁 먹는 레스토랑을 찾거나 조식을 먹기 위해서는 골목길에서 이 집 저 집을 찾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산책하며 호텔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다. 오래된 전통 가옥을 세련된 디자인과 조명으로 살려 낸 인테리어도 색다른 체험을 원하는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나라에도 고택(古宅) 스테이나 한옥 민박, 농어촌 민박이 있긴 하지만 집주인이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서비스나 시설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오즈의 마을 분산형 호텔은 전문적인 호텔 기업과 은행, 지자체가 컨소시엄을 이뤄 ‘닛포니아(NIPPONIA)’라는 브랜드로 운영한다. 한적한 시골인데도 5성급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현지 직원도 채용하지만 오사카 본사에서 온 정규 직원도 30%나 된다.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르 앙(Le Un)’ 주방은 스위스 유학파 출신 셰프가 맡고 있다.

오즈의 마을 호텔은 민가로만 끝나지 않는다. 강변 언덕에 우뚝 솟은 랜드마크 오즈성(大州城) 천수각(天守閣·성에서 가장 크고 높은 누각)에서는 캐슬(castle) 스테이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배경이 됐던 오즈성에 묵는 고객은 일일 성주(城主) 체험을 하게 된다. 체크인을 하면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말을 타고 입성한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배우 20여 명이 화려한 입성 세리머니를 해 준다.

만찬은 오즈성 성주였던 가토(加藤) 가문의 요리를 재현한 코스 메뉴. 식사 전 약 30분간 전통 궁중음악인 가가쿠(雅楽) 연주, 신도 가구라(神楽) 춤을 비롯한 전통예술 공연도 펼쳐진다. 오즈성에서 하룻밤 머무는 데는 2인 기준 136만 엔(약 1262만 원). 상당히 비싸지만 2020년부터 50개 팀이 숙박했다고 한다.

오즈성에서 묵은 다음 날 아침은 히지 강변 유서 깊은 별장인 가류산장(臥龍山莊)에서 먹는다. 캐슬 스테이는 못 했지만 가류산장은 입장료를 내고 둘러볼 수 있었다. 초가지붕을 머리에 얹고 있는 농가풍 건물 가류인(臥龍院)은 일본 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바위 절벽에서 아래포 강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실(茶室) 후로안(不老庵)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살아 있는 향나무로 만든 스테바시라(捨柱·처마를 받치며 땅에 닿는 기둥)다. 이 향나무는 위쪽은 잘려 더는 자라지 않지만 옆가지가 살아 있어 잎이 푸릇푸릇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인근 또 다른 소도시 사이조(西条)의 이토마치는 노천 온천, 깨끗한 물과 함께 에너지 제로(0) 마을이라는 독특한 실험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800명 정도인 주민이 사흘 동안 사용할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시설을 갖춘 호텔과 주택촌,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과 마르셰(March´e·농부 시장) 등이 강변 광장에 펼쳐져 있다. ‘이토마치 호텔 제로’ 로비 모니터에는 매일 자체 생산한 에너지와 소비가 균형을 이루면 ‘0’이라는 표시가 뜬다.

● 나쓰메 소세키 소설 ‘도련님’ 속으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속 증기기관차를 재현한 ‘봇짱 열차’.

나쓰메 소세키 소설 속 증기기관차를 재현한 ‘봇짱 열차’.
에히메현 마쓰야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온천 중 하나인 도고(道後)온천으로 유명한 도시다. 마쓰야마역에서 도고온천역까지는 토머스 기차처럼 생긴 귀여운 꼬마 열차가 운행한다. 옛 일본 1000엔 지폐 모델이자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동명 소설에서 이름을 따온 ‘봇짱(坊ちゃん·도련님) 열차’다.

“나는 이곳에 온 후 매일 스미타온천에 갔다. 다른 곳은 어디를 가도 도쿄 발끝에도 못 미치는데 온천만큼은 훌륭했다. (중략) 나는 수건을 온천 갈 때나 올 때나 기차에 탈 때나 늘 손에 들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나를 빨간 수건, 빨간 수건 하고 부른다는 것이다. 동네가 좁아서 이래저래 시끄럽다.”

실제로 소세키는 28세에 시코쿠 마쓰야마의 한 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해 1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그가 소설 속에서 ‘스미타온천’이라고 표현한 도고온천에 갈 때 탔던 기차가 메이지시대 중기인 1888년부터 67년간 운행한 증기기관차다. 디젤기관차로 재현한 ‘봇짱 열차’는 실제로도 ‘뽁∼뽀∼’ 소리를 내면서 달린다.

스타벅스로 변신한 도고온천 역사(驛舍)에서 나와 온천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소설 속 장면이 눈앞에 정말로 어른거린다. 매시간 정각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시계탑 안에서 ‘도련님’ 등장인물인 붉은 셔츠(교감), 마돈나(마을 최고 미인) 같은 캐릭터들이 노래에 맞춰 빙글빙글 돌면서 나와 인사를 한다. 아케이드엔 소세키가 들렀던 경단 파는 집과 메밀국수집이 있고, 다양한 종류의 감귤주스를 시음할 수 있는 바도 있다.

5년 반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재개장한 도고온천 본관.

5년 반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재개장한 도고온천 본관.
아케이드를 지나면 도고온천 본관이다. 지붕 꼭대기에 도고온천 상징인 하얀 백로가 날개를 펴고 있다. 약 3000년 전부터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도고온천에는 1899년에 만든 왕실 전용 온천 ‘유신덴(又新殿)’도 남아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금박으로 장식된 왕실 전용으로 만든 온천탕과 휴게실 등을 해설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도고온천 본관은 약 5년 반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7월 영업을 재개했다. 3층 목조건물로 구불구불한 계단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가족 휴게실 중에는 소세키에게 헌정된 방도 있다.

직원 와타나베(渡部) 씨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 건물 꼭대기 빨간색 탑은 도고온천의 붉은 유리창으로 된 망루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볼만한 곳

에히메현 기로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마나미카이도 너머 노을.

에히메현 기로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마나미카이도 너머 노을.
◇일본 세토내해 6개 섬과 혼슈(本州)를 잇는 시마나미카이도(しまなみ海道)는 일본 최초로 해협을 건널 수 있는 교량의 자전거길로 유명하다. 오시마(大島)에 있는 기로(龜老)산 전망대(해발 307.8m)에서는 시마나미카이도 너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마쓰야마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다카가와 신이요(タカガワ新伊予) 골프클럽과 오즈 골프클럽은 멀리 세토내해 풍광과 이시즈치(石鎚) 산맥의 설경을 바라보며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평일 기준 그린피 약 7000엔(약 6만4000원·카트 및 식사 포함) 정도다.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고 따뜻한 골프장이다.

◇마쓰야마공항 관광안내센터에서는 ‘한국인 여행자 전용 무료 교환권’을 준다. 도고온천 별관 아스카노유 및 마쓰야마성 천수각, 케이블카 등을 무료로 이용하고 오즈성, 이마바리성, 반센소(盤泉荘) 등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입장할 수 있다. 여행객을 위해 마쓰야마공항에서 마쓰야마 시내나 도고온천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글·사진 에히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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