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경제 핵전쟁
트럼프의 전략은 얼핏 보면 진짜 미치광이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꼼꼼한 계획이 있다. 그는 우선 상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강력한 ‘선빵’을 날린다. 그리고 반응을 봐가면서 다음 작전을 구사한다. 만일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일부를 희생양 삼아 2차, 3차 공격을 감행하고, 이 과정을 마치 리얼리티쇼를 하듯 자랑스럽게 기자회견이나 SNS를 통해 공개한다. 아무리 황당한 정책도 진짜 실행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줘 상대의 공포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전략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최종 목표, 즉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호성과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사람들은 이 대환장 관세쇼의 결말을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 트럼프는 고율의 관세 부과와 부과 연기, 추가 관세 같은 중요한 결정을 매일 손바닥 뒤집듯 한다. 관세율 산정 방식도 주먹구구다. 논리적 근거는 빈약하고 인용하는 통계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상대가 상식에 입각해 행동하지 않으니 무슨 패를 갖고 있는지, 나중에 어떻게 입장을 바꿀지 도통 예측할 수가 없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흔히 바보 같은 상대를 비꼴 때 하는 말인데,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가 그렇게 나오면 이는 비웃음의 대상이 아닌 공포 그 자체일 뿐이다.
앞으로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미국의 선공에 중국 등 각국의 강력 보복으로 글로벌 무역전쟁이 확대되면 모두가 공멸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100년 전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든 대공황식 파국이다. 두 번째로는 관세 전쟁의 부메랑이 미국 경제를 덮치며 트럼프가 민심에 밀려 먼저 백기를 드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트럼프의 위협과 각국의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미국이 화력을 대중(對中) 전선에 집중하면서 트럼프 1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을 꺾으려는 미국과 그 자리를 넘보려는 중국. 두 나라가 적당히 타협하느냐, 정면충돌하느냐는 트럼프 두 번째 임기 4년 내내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트럼프의 과녁이 중국을 향한다 해도 우리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트럼프가 또 마음을 바꾸면서 화살을 우리 쪽으로 겨냥할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다. 그러나 이처럼 상대 전략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조급한 마음에 우리 패를 먼저 내보이며 조아리면 자칫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트럼프가 지금은 세 보일지 몰라도, 관세 부작용으로 여론 압박이 커지면 아무리 그라고 해도 버틸 방도가 없다. 시간은 오히려 우리 편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결국 버틸 수 있는 경쟁력 있어야 승리
우리는 협상도 협상이지만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중의 강 대 강 대치는 글로벌 공급망과 기술 생태계의 단절을 심화시켜 중국 경제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으려면 산업 경쟁력을 부단히 쌓아 올려 핵심 분야의 초격차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이 전쟁은 어차피 장기전이고, 그 승리는 결국 버티는 자의 차지가 될 것이다.유재동 산업1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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