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병기]지지층 향해 주먹 불끈 쥔 尹의 트럼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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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문병기 정치부장
극적인 순간, 정치인의 행동과 메시지가 갖는 무게감은 남다르다. 위기가 클수록, 반전의 강도가 강할수록 극적인 효과도 강해진다. 짧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겐 52일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8일 서울구치소를 나서던 장면이 그런 결정적 순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호인을 통해 내놓은 윤 대통령의 입장문엔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 대신 강성 지지층을 향한 감사가, 승복 대신 불법 수사에 대한 강변이 담겼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11차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 윤 대통령의 행동에 헌법재판소 앞 시위대의 목소리는 커지고 분열의 골은 깊어졌다.

불법 수사 피해자로 자신을 규정한 尹

비상계엄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지지자들과 만나 주먹을 불끈 쥔 윤 대통령의 모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겹친다.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쥐어 보이는 행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 포즈 중 하나다.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형사 기소돼 위기를 맞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로 부활했다. 그의 부활의 상징적인 두 장면을 꼽으라면 2023년 조지아주 구치소에 출두하면서 찍은 카메라를 노려보는 ‘머그샷’, 그리고 지난해 7월 유세장에서 총기 피습 후 지지자들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린 장면이다.

석방된 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석방 입장문 등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과 빼닮아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석방 입장문에서 ‘불법을 바로잡은 법원’, ‘응원을 보내준 국민과 미래세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자신을 반국가세력이라는 거악과의 싸움 과정에서 불법 수사로 박해받는 피해자로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는 대목을 두곤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국민의힘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석방 직후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과 먼저 전화 통화를 한 뒤 국민의힘 투톱을 관저로 불러 차담을 가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강성 지지층을 향해 ‘보수가 나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부정선거론, 이른바 ‘빅 라이(Big Lie)’를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수사를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조종하는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하며 끊임없이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020년 대선 패배 후에도 공화당 강경파인 ‘프리덤 코커스’ 등을 통해 당권에 개입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부활의 발판으로 삼았다.지지층 결집 대신 승복 메시지 내야

윤 대통령은 아직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승복할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유세 과정에서 끝끝내 대선에서 패배해도 승복하겠다는 선언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길은 다르다. 트럼프는 지지층 결집으로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고 면책권을 받았지만, 윤 대통령은 선거가 아닌 사법심판을 앞두고 있다. 탄핵심판과 별개로 진행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면책 대상도 아니다. 지금 윤 대통령은 지지층을 향한 감사가 아니라 사과와 승복의 메시지를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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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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