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고율 관세 정책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10일 미 나스닥지수가 4% 급락하는 등 뉴욕 증시가 극도의 패닉에 빠진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확언을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10일 증시 폭락의 도화선이 된 트럼프의 ‘과도기(transition)’ 발언이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니었을까. 그는 9일 친(親)트럼프 매체로 꼽히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 침체를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고관세 정책엔) 과도기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미국의 부를 다시 창출하는 대단한 일이며, 여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대통령이 고관세에 따른 경기 침체 부작용을 사실상 시인한 거라고 해석하며, 경기 하락에 풀베팅했다.
사실 경기 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미국 경제지표는 혼재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중 소비 부문에선 하락세가 확연하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1월 개인소비지출(PCE)은 전월 대비 0.2% 줄어 팬데믹 때인 2021년 2월(―0.6%)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큰 감소율을 보였다. 생산 부문에서도 2월 미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전월(50.9) 대비 0.6포인트 하락해 제조 업황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관세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물가는 아직까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2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에 그쳐 시장 예상을 밑돌았다. 고용 부문도 2월 비농업 부문 일자리가 15만1000개 증가해 전달(12만5000개)보다 늘었다. 2월 실업률이 4.1%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높아졌지만, 비교적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결국 미국 내 소비와 생산이 위축된 반면, 물가와 고용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이 “30일마다 이런 ‘사이코 드라마’를 겪을 순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경제에서 불확실성은 소비자와 기업들에 불안 심리를 자극해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 불안이 뱅크런을 일으키며 경기 침체를 촉발시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해 2월 미 소비자신뢰지수가 전월 대비 7포인트 하락해 2021년 8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한 건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장을 이긴 통치 권력은 없었다. 트럼프가 일종의 세금인 관세로 미국의 부(富)를 이루고자 한다면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1776년)에 쓴 다음의 구절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가를 가장 낮은 야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부유로 이끄는 데 필요한 건 평화와 ‘낮은 세금’, 공정한 법 집행뿐이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방해하는 모든 정부는 폭압적일 수밖에 없다.”
김상운 국제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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