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2월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 공직 때 수없이 반복한 얘기다. 옛말에 못된 놈 옆에 있으면 날벼락 맞는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투명하게 살 자신 없으면 내 옆에 있지 말라는 얘기를 수없이 했다”고 덧붙였다.
유력 대선 주자가 꺼낸 ‘표적론’의 양면성
최근 만난 민주당 인사로부터도 비슷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이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경선캠프에 합류한 의원들에게 “내가 모난 돌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여러 피해를 입었다”며 “여러분도 ‘사선(射線) 위의 표적’이 된 것”이라고 했다는 것.단순한 수사로 넘기기엔 어려운 말들이다. ‘모난 돌’과 ‘못된 놈’이란 표현에는 거친 아웃사이더라는 자기규정이, ‘날벼락’과 ‘사선 위의 표적’엔 자신이 과도한 공격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나는 표적’이라는 인식엔 양면성이 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에서 9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독주체제를 굳혔다. 외곽 싱크탱크에는 3000명의 학자와 전직 관료들이 몰려들었다가 논란 끝에 활동을 멈췄다. 벌써 대통령이 된 듯 행동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 근처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메시지는 대세론에 도취돼 경계심이 흩어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력한 대선 후보가 자신을 ‘사선 위의 표적’으로 규정할 때 정치는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상대는 ‘공격하는 자’, 우리는 ‘방어하는 자’라는 구분 아래에선 대화와 타협, 설득과 공감 대신 생존이 우선이기 마련이다. 이 전 대표의 이 같은 인식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법리스크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21일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간담회에서 그는 “괜찮으면 제가 마이크는 좀 끄고 하겠습니다. 뭐 혹시 말실수한다고 또 꼬투리 잡혀 가지고…”라며 “제가 하도 말꼬투리 잡혀서 고생을 많이 하는 바람에 증폭기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토론회와 방송 인터뷰 등에서 한 발언들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을 받고 있다.표적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일까. 이 전 대표는 대선 출마 후 공개 메시지와 현장 행보를 대폭 줄였다. 대선 출마 선언은 미리 녹화한 영상으로, 대선 공약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정제된 글로 대신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순회 경선을 제외하면 현장 행보도 거의 없다.
검증 기회 빼앗는 ‘로키(Low key)’ 행보
유력한 대선 주자의 방어적인 행보는 유권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검증 기회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 때도 11차례 진행됐던 민주당 경선 TV토론은 올해 대선에선 세 차례에 그친다. 그마저 기억에 남는 변변한 논쟁이 없는 맹탕 토론이란 비판을 받는다. 토론회에 참가한 대선 주자들도 스스로 “토론회보단 간담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다. 아직 탄핵 찬반을 두고 다투고 있는 국민의힘 경선 상황을 보면 대선 본선에서도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6·3대선은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선거다. 대통령 잔혹사를 끊어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철저한 검증이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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