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인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1월 이 ‘사랑의 질서’를 인용해 강경 이민자 추방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가족이 먼저, 다음이 이웃, 소속 집단, 동료 시민, 국가 순서이며, 그 이후에 세상의 나머지를 사랑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누군가가 이를 비판하는 글을 X에 올리자 밴스 부통령은 친히 답장까지 남겼다. “구글에 쳐 보세요.”
그가 “기본적인 상식”을 운운하며 오르도 아모리스를 ‘자국민 우선주의’처럼 강변하자, 몇 주 뒤 진짜 강적이 나타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그는 2월 10일 쓴 ‘미국 주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대량 추방정책 등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위기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고 운을 떼며 성경 속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예시로 들었다.“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에서 대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예수는 답한다. 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외면한 성직자보다,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혼혈 민족이지만 그를 도우려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우리가 따라야 할 이웃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진정한 사랑의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열려 있는 형제애의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결코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반박한 것이다.
‘모두에게 열린 사랑’은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자취를 단적으로 요약한다. 천주교에서 금기로 여겨지는 동성애자에 대한 견해를 질문받았을 때조차도, 그는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는가”라는 겸허한 답변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또 모두에게 교회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그가 한편에서 사랑을 열어가는 동안, 다른 편에선 ‘사랑의 질서’를 충분히 알 만한 지도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밴스 부통령뿐만이 아니다. 본인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적극 알린 강경보수 성향의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해상을 봉쇄해 불법 이민을 막자는 무관용 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역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폴란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성소수자 운동이 공산주의보다 해롭다”고 주장했다. 초유의 계엄 사태로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천주교 세례를 받은 바 있다. 교황은 가톨릭의 수장인 동시에, 전 세계의 정치, 외교,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종교를 초월해 나타나는 뜨거운 추모 열기는 교황이 생전 강조한 ‘열린 사랑’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다.후임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가 다음 달 초 진행될 예정이다. 보수파에서는 교리보다 포용을 중시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그의 선종은 무너진 사랑의 질서를 바로 세우라는 유산을 곱씹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파파’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우리가 ‘어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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