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현수]한국판 ‘트럼프 트레이드’ 올까

3 days ago 7

김현수 경제부장

김현수 경제부장
최근 만난 금융권 고위 임원의 표정이 밝았다. 주가가 6개월 전 수준 이상으로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3일 고점을 찍었던 주가는 그날 밤 계엄 사태 이후로 곤두박질쳤었다고 한다. 4월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이 주가를 뒤흔들었다. 이제서야 계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차갑게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서 금융권은 실적이 좋은 거의 유일한 업종이라는 점이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줬겠지만 한국 증시에 외국인투자가가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원-달러 환율이 계엄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고,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이 모두 증시 부양책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한 점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희망 반, 기대 반에 소비심리 반등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최근 ‘한국-지금이 상승세의 시간(Korea―Time for upside is now)’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대선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밸류업’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증시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발표했던 4월 한 달 동안 외국인투자가들은 무려 13조6000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5월 들어선 현재까지 1조4000억 원 이상을 순매수하고 있다.

투자, 고용, 수출 등이 모두 절망적인 경제지표 틈새에서 실낱같은 긍정적인 소식도 들렸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101.8로 4월(93.8)보다 8.0포인트(p) 오른 것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말 그대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뜻한다. 100보다 높으면 경제를 낙관적으로,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본다는 것이다. 7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을 넘어선 데다 상승 폭으로 따지면 2020년 코로나 공포가 다소 누그러졌던 그해 10월(+12.3p) 이후 4년 7개월 만에 전월 대비 최대 상승 폭이다. 계엄 사태에 억눌렸던 소비자들의 마음에 대선판 장밋빛 약속에 대한 기대감이 스며들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제는 경제주체들의 판단과 선택의 결과인 만큼, 소비자들의 마음에 희망 한 방울이라도 생긴 것은 0%대의 암울한 성장률 전망 속에서 고무적인 소식이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대선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친시장 정책 기대감에 소비심리가 개선되고 증시에 돈이 몰리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등장한 바 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지 않길 하지만 신고가를 써 내려간 트럼프 트레이드는 취임 후 뒤이은 관세폭탄과 일관성 없는 정책 탓에 단기성 테마 이벤트로 전락했다. 증시도 채권 시장도 모두 출렁이며 실물경제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확실한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서 소비심리가 당파적으로 나뉜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소비자심리지수는 급격히 상승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심리는 떨어졌다. 반대하던 후보의 당선은 소비심리를 악화시킨다는 의미다.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 정치 지형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0%대 성장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싹이 튼 낙관적인 기대가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실질적인 경제 정책뿐 아니라 갈등을 봉합하는 통합의 리더십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단기적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경기 부양을 하되 장기적으로 제조업 쇠퇴, 혁신 동력 악화, 생산성 저하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까지 대수술에 나서야 하는 매우 어려운 시점이다. 리더십 공백 속에서 겨우겨우 버텨 온 한국 경제에서 ‘정치적 불확실성’ 같은 단어들도 완벽히 지워져야 한다.

짧은 선거 기간에 정책 검증 없이 치러지는 선거지만 국민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희망을 찾아 나서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들의 희망에 ‘역시나’로 되갚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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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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