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자유화의 역설: "람보르기니를 샀지만, 주유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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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다가, 급하면 목돈으로 좀 빼서 쓸 수 있나요?” 한국의 은퇴자들은 답답해합니다. 우리의 인출 시장은 전액 일시금과 일정 기간 분할수령 사이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투자형 인출이나 부분 연금화처럼 유연한 중간 선택지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내 돈인데 내 삶의 변화에 맞춰 꺼내 쓰기 어렵다는 불만, 이것이 사람들이 연금 수령을 기피하고 일시금으로 털어버리는 숨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015년, 영국에서는 이 빗장을 크게 풀어버리는 파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명 ‘연금 자유화(Pension Freedoms, 2015년 영국이 가입자에게 의무적 종신연금 구매 대신 55세 이후 적립금 인출 및 운용의 자유를 허용한 개혁)’입니다. 2015년 영국, “람보르기니를 살 자유를 허하라” 2014년 3월, 영국의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의회에서 예산안을 발표하며 폭탄 선언을 합니다. 이제 은퇴자는 억지로 종신연금을 살 필요가 없고, 평생 모은 확정기여형 연금 적립금을 어떻게 쓸지는 개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논쟁을 상징한 말이 바로 “람보르기니를 살 자유”였습니다. 이전까지 영국 은퇴시장은 종신연금 구매가 강한 표준 경로였습니다. 하지만 2015년 4월부터 확정기여형 연금 가입자는 55세 이후 세금을 내고 적립금을 훨씬 자유롭게 인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자유의 대가 — “너무 빨리 써버렸다” 이 정책은 초기에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환호만 남지는 않았습니다. 자유화 이후 몇 년이 지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일부 은퇴자는 목돈을 인출해 집을 고치거나 빚을 갚는 데 썼고, 일부는 인출 후 남은 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스포츠카를 산 것은 아니었지만, 선택권이 넓어진 만큼 노후 자금이 너무 빨리 줄어들 위험도 커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현금 선호’와 무관심이었습니다. 영국 금융당국은 자문을 받지 않는 소비자 상당수가 기존 금융기관에서 가장 쉬운 경로를 택했고, 일부는 인출(drawdown)에 들어간 뒤에도 자신의 돈이 어디에 투자되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금융기관은 소비자를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에 사실상 머물게 하기도 했습니다. 운용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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