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한국 수출은 878억달러(통관 기준)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도 372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6월 4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31원까지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1530원대에서 거래를 시작한 것은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이었다.
환율이 오른다는 말은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1달러를 1300원에 사던 사람이 1500원을 내야 같은 1달러를 살 수 있다면, 원화의 달러 구매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는 국면에서 원화 가치가 왜 거꾸로 떨어졌는지가 이번 고환율의 핵심이다.
답을 찾으려면 한국이 얼마나 벌었는지부터 봐야 한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서 4월 경상수지는 283억달러 흑자였다. 경상수지는 나라 전체가 외국과 거래한 가계부에 가깝다.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팔고, 배당과 이자를 주고받은 결과를 모두 합쳐 들어온 돈이 나간 돈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준다.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027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물건을 사고판 상품수지 흑자만 4월 한 달 동안 339억달러였다. 이는 수출 증가가 흑자를 키웠기 때문이다. 국제수지 기준 4월 수출은 906억달러로 1년 전보다 55% 늘었다. 수입은 567억달러로 16% 증가했다. 수출 증가율이 수입 증가율을 크게 웃돌면서 상품수지 흑자가 커졌다.
교과서대로라면 이만큼 벌어들인 달러는 원화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원화는 반대로 움직였다. 달러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벌어들인 달러가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는 힘으로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 한국이 번 달러가 어디로 움직였고, 그달러가 왜 원화의 바닥을 만들지 못했는지를 봐야 하는 이유다.
상품수지 흑자만으로 원화는 강해지지 않았다
원래 수출은 원화의 바닥을 떠받친다. 그 과정은 단순하다. 수출기업이 외국에서 달러를 받으면, 국내에서 임금을 주고 협력업체에 대금을 치르고 공장에 투자하려고 원화로 바꾼다.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는 거래가 쌓일수록 원화를 찾는 손이 늘고 원화 값은 오른다. 한국 경제는 오랫동안 이 길을 따라 움직였고 수출 호황과 원화 강세는 함께 오는 일로 여겨졌다.
이번에는 이 길의 중간이 헐거웠다. 4월 상품수지가 339억달러 흑자를 내고 5월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동안에도 환율은 내려가지 않았다. 원화는 1530원대까지 밀렸다. 까닭은 환율이 정해지는 방식에 있다. 환율은 장부에 적힌 흑자 규모가 아니라 국내에 있는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사려는 손과 달러를 사려는 손이 실제로 맞부딪치는 자리에서 정해진다. 한국이 아무리 많이 벌어도 같은 시기에 달러를 사려는 손이 더 많으면 원화는 약해진다.
달러를 사려는 손은 멀리 있지 않았다. 경상수지 흑자 안쪽에 이미 달러가 다시 빠져나가는 통로가 있었다. 4월 상품수지는 339억달러 흑자였지만 서비스수지는 24억달러 적자였다. 본원소득수지도 25억달러 적자였다. 특히 본원소득수지 적자가 눈에 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많이 가진 만큼, 기업이 배당을 주면 그 몫은 외국인 손으로 넘어간다. 외국인은 이 배당을 본국으로 가져가려 다시 달러로 바꾸고 그 환전이 또 다른 달러 수요가 된다. 한국이 상품을 팔아 번 달러가 소득 계정에서는 외국인 배당을 따라 다시 빠져나가는 셈이다.
물론 이 통로가 흑자를 날려버린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경상수지는 여전히 283억달러 흑자였고, 상품수지가 나머지 적자를 충분히 덮었다. 다만 상품수지라는 큰 숫자 하나만 보면 달러가 원화로 남지 않고 빠져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기 외환시장을 흔든 더 큰 힘은 금융시장에서 나왔다.
한미 금리차와 달러 강세가 원화를 끌어 내렸다
환율을 직접 밀어 올린 더 큰 힘은 금리에 있었다. 돈은 이자를 더 주는 쪽으로 흐른다. 각종 금리의 기준이 되는 한국 기준금리는 2.5%, 미국 기준금리는 3.75%(상단 기준)다. 두 나라 금리 차이는 1.25%포인트다. 같은 돈을 원화 자산에 둘 때보다 달러 자산에 둘 때 이자를 더 받으니, 투자자에게는 원화를 팔고 달러를 들고 있을 이유가 생긴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면서 달러를 보유할 유인은 더 강해졌다. 미국 10년물 금리는 지난 4~5월 4%대 중반에 달했고, 2년물 금리도 4% 안팎으로 올라섰다. 달러로 사는 대표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의 이자가 오를수록 전 세계 돈은 안전하면서도 이자를 많이 주는 달러로 모인다.
중동전쟁과 원자재 불안도 원화에 부담을 더했다.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한국은 정세가 흔들릴수록 수입 부담과 물가 부담을 함께 떠안는다. 이런 불안 속에서 투자자는 흔들리기 쉬운 원화를 덜고 안전한 달러를 채운다. 다만 6월 초 원화를 1530원대까지 밀어 올린 결정타는 유가가 아니었다. 유가는 4월 말 이후 오히려 내려왔고 미국 금리와 달러 강세가 더 오래 부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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