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또 울컥. 그룹 여자친구와 팬들의 재회 현장은 벅참의 연속이었다. 히트곡의 향연이 10년의 세월을 추억하게 했고, 열정을 쏟아내는 무대 위아래의 호흡은 여전히 빛나는 이들의 현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여자친구(소원, 예린, 은하, 유주, 신비, 엄지)는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10주년 기념 콘서트 '시즌 오브 메모리즈(Season of Memories)'를 개최했다. 지난 17~18일에 이은 3회차 공연이다.
여자친구가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 건 2020년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이들은 2021년 5월 데뷔를 함께했던 소속사 쏘스뮤직과 결별하고 현재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탄탄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던 팀이었던 만큼, 이들의 갑작스러운 해산 소식은 당시 많은 K팝 팬들에게 아쉬움을 줬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올해 멤버들은 팬들의 긴 기다림에 보답하기 위해 다시 뭉쳤다. 공연은 3회차 모두 전석 매진돼 총 9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에 시야제한석까지 추가 개방했다.
공연은 걸그룹 최초로 1억 스트리밍을 달성했던 히트곡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포문을 열었다. 파워풀하고 활기찬 안무에 안정적인 보컬로 시작부터 에너지를 쏟아부은 멤버들을 향해 버디(공식 팬덤명)들은 우렁찬 떼창으로 화답했다. 공연장 가득 씩씩한 목소리가 울려 퍼져 감동을 안겼다.
이어 '너 그리고 나', '귀를 기울이면'까지 여자친구 하면 바로 떠오르는 명곡 무대가 펼쳐졌다.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 콘페티와 함께 10주년 자축 파티의 막이 올랐다. 무대 위아래의 호흡이 환상적이었다. 여자친구는 전매특허인 '파워풀한 칼군무'를 쉼 없이 선보였고, 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과 떼창을 무대로 위로 보내며 최고의 시너지를 냈다.
여섯 명의 멤버가 서 있는 무대, 이들의 음악을 기억하고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는 관객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서사를 완성했다. 공연이 열린 올림픽홀은 여자친구의 첫 단독 콘서트가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멤버들은 연신 "울컥했다"고 말했다. 은하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버디와 우리가 진짜 친구라고 느꼈다. 의리가 느껴져서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엄지는 "언제나 함성이 대단하지만, 오늘은 정말 더 대단한 것 같다"고 감탄했다.
공연은 콘셉트를 나눠 1부 '파워 청순', 2부 '격정 아련'으로 진행됐다. '핑', '핑거팁'으로 분위기를 더 뜨겁게 달군 여자친구는 이후 무대 아래로 내려와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하고 선물을 건네며 사랑스럽게 '물꽃놀이'를 부르며 특별한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바람' 키워드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의 노래', '바람에 날려'를 매쉬업한 무대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여자친구는 감성을 자극하는 청순함으로 사랑받았던 '여름비'에 이어 '봄비', '드림캐처'까지 부드럽게 소화하며 '파워 청순' 섹션을 마무리했다.
'격정 아련' 섹션은 여자친구의 콘셉트 변신으로 화제가 됐던 '마고(MAGO)', '애플(Apple)'로 시작됐다. 팬들은 놀라울 정도의 목청을 자랑했다. 1부에 이어 2부 역시 한시도 쉬지 않고 있는 힘껏 응원법을 외쳤다.
"각자 다른 저희가 10년 동안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게 기적 아닌가요."
장난스럽게 던진 소원의 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긴 시간 하나의 팀으로 견고하게 뭉친 여섯 멤버, 그리고 이들의 색이 바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랑을 덧칠해주는 팬들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10년이었다. '레인보우', '플라워', '온리 원'을 잇달아 부르는 여자친구를 향해 팬들은 힘차게 응원봉을 흔들었다.
데뷔 후 첫 음악방송 1위라는 영광을 안겨준 곡이자, 음악방송 15관왕을 달성한 '시간을 달려서'가 나오자 장내는 벅찬 감동으로 채워졌다. 멤버들은 격정적인 안무에도 흔들림 없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명불허전 실력을 자랑했다. 객석에서는 역대급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간을 달려서'에 이어 '교차로', '유 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 '해야', '밤'까지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라이브 퍼포먼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앙코르도 여자친구의 과거와 현재를 집약하는 구성이었다. 데뷔곡 '유리구슬'로 시작해 1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곡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까지 이어져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의 다정한 계절 속에'는 첫 단독 콘서트 당시 팬들이 준비했던 슬로건 '너희의 다정한 계절 속에 영원히 함께할게'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다. 이번 공연에서 팬들은 '늘 닿을 수 있는 곳에 버디가 있어 줄게'라는 문구가 적힌 슬로건을 들었다.
공연을 마치며 신비는 "10년 활동하는 동안 3일 콘서트를 한 적이 없었는데 10주년에 좋은 기회로 하게 됐다. 한동안 못 봤던 버디들을 봐서 행복했다"면서 "예전부터 10주년은 꼭 챙기자고 했다. 이걸 실현해 준 멤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재결합 콘서트를 준비해 준 쏘스뮤직을 향해서도 감사 인사를 전하며 "친정에 온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딱히 우리가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맞춰져 있는 게 있었다. 편안하게 10주년을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팬들에게는 "같은 자리에서 우릴 기다려 줘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행복하자"고 했다.
예린은 "버디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주고 싶다"고 말하다 눈물을 쏟았다. 그는 "무대에서 멤버들 눈을 마주치는 게 행복했다. 직원 4~5명 시절에 '우리가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하다. 운이 많이 따라줬다는 생각도 든다. 버디들이 많이 사랑해 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항상 빛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털어놨다.
소원도 눈물을 흘렸다. 소원은 "당연히 우리가 마지막은 아니지만,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계속 만나다가 당분간은 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슬프더라. 하지만 마지막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4년간 버디들은 아주 답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무거웠던 마음은 잠시 잊자. 앞으로 행복만 하자"고 외쳤다.
은하 역시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은하는 "콘서트를 할 때마다 가수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많이 격려하고 응원해 준 멤버들과 지인분들, 직원분들 너무 감사하다.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여러분께 감사하다. 멤버 모두 응원해 주고 사랑해 달라"고 인사했다.
엄지는 앞서 새벽 6시 반에 쓴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에는 "서운함, 원망 등을 다 위로해 주는 시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기억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시간은 결코 정체되지 않고 멋지게 흘러가고 있었다고 믿는다", "멋진 날에 다시 만난 우리는 더 튼튼하고 깊어졌다", "혹여나 무언가가 다시 멈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이 추억을 가지고 또다시 멋진 날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등의 따스한 위로와 공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주는 "몇 달 간 고군분투하며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던 하루하루가 이미 무대와 다를 바 없는 눈부신 시간이었다. 2025년 1월 이 겨울을 우리의 다정한 계절로 꼭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독감에 걸린 그는 "100%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200%, 300% 전달됐길 바란다"면서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지금의 유주를 만들어준 여기 있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자친구는 오는 3월 9일 오사카, 3월 11일 요코하마, 3월 14일 홍콩, 3월 22일 가오슝, 3월 29일 타이베이 등 5개 도시에서 아시아 투어를 이어간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