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재-민주주의 중간인 ‘아노크라시’… 내전 움튼다

8 hours ago 4

자정능력 잃고 반란 진압도 불가
“많은 국가 아노크라시 상태” 경고
선출 지도자가 민주주의 지켜야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바바라 F. 월터 지음·유강은 옮김/336쪽·2만2000원·열린책들

2021년 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는 친(親)트럼프 대통령 시위대(위 사진)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고 있는 계엄군. 저자는 미국 등 많은 국가가 내전의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 체제인 ‘아노크라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2021년 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는 친(親)트럼프 대통령 시위대(위 사진)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고 있는 계엄군. 저자는 미국 등 많은 국가가 내전의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 체제인 ‘아노크라시’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동아일보DB


2021년 1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하원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찬성 232명, 반대 197명으로 통과시켰다. 혐의는 ‘내란 선동’.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의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인증을 방해하려고 지지자들이 의회를 공격하도록 선동했고, 이는 미국의 안보와 민주주의 체제를 심각하게 위협했다는 이유였다. 며칠 전인 6일 국회가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확인하고 공식 인증할 예정이었는데,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입해 국회를 점거하고 무산시키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국회 난입 직전에 백악관 남쪽 공원에서 열린 ‘미국을 구하라(Save America)’ 집회에 참석해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이겼고, 압승했다”, “우리는 도둑질을 멈추게 할 것이다”라며 선동했다. 결국 난동으로 5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탄핵안 토론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무장 반란을 선동했다. 그는 물러나야 한다. 이 나라의 명백한 실존하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11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내전과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분야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사례에서 보듯 ‘민주주의는 최고의 시스템이고,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기에 위기가 닥쳐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오판인지를 책에서 신랄하게 지적했다.

저자는 현재 많은 국가들이 내전의 가능성이 가장 큰 정치 체제인 ‘아노크라시(anocracy)’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아노크라시는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하강하는 중간 상태를 말한다. 독재 정권은 반란 세력을 누를 힘이 있고,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는 폭력(내전)이 벌어지기 전에 불만을 해소할 능력이 있어 내전이 벌어지지 않는다.

반면 아노크라시 체제는 당근과 채찍 어느 쪽도 제대로 내놓을 능력이 없다. 인종, 종족, 종교, 이념 등을 앞세우는 파벌주의의 물결을 막지 못한다. 가짜뉴스 등을 통해 분노와 혐오를 증폭시켜 내전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등 ‘촉매’도 제어하지 못해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독재 국가로 변신하는 것은 …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무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장치에는 대통령에 대한 제약과 입법, 사법, 행정의 견제와 균형, 책임성을 요구하는 자유로운 언론, 공정하고 개방된 정치적 경쟁 등이 있다.’(1장 ‘아노크라시의 위협’ 에서)

작금의 우리 현실과 얼마나 똑같은지, 소름이 끼친다. 원제 ‘How Civil Wars Start: How To Stop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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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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