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 논쟁은 “숫자가 맞느냐 틀리냐”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빚을 두고도 전혀 다른 분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재정모니터(Fiscal Monitor)’ 보고서를 놓고 청와대가 사실상 “공포 마케팅”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발단은 IMF가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이 2026년 54.4%, 2027년 56.6%, 2031년 63.1%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 데 있다. 2027년 한국의 부채비율은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 평균 55.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IMF가 한국을 두고 주목한 것은 현재의 절대 수준보다 앞으로의 상승 경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국가부채비율 논란의 허실’이라는 제목으로 사실상 반박에 가까운 글을 올렸다. 요지는 분명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며, IMF나 OECD 발표가 나올 때마다 국내에서 과도한 “공포 프레임”이 덧씌워진다는 것이다.
그는 2025년 결산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D1)가 GDP 대비 49% 수준인 데 비해 OECD 평균은 109%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국가부채의 절대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아직 재정 여력이 있는 나라라는 설명이다.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도 반박에 동참했다. 빠른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이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재정 지속가능성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식의 논지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앙정부 기준 부채비율이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고, 국채 이자지급액도 GDP 대비 약 1%여서 관리 가능한 범위라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날 IMF 전망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연동계획을 토대로 작성한 만큼 정책 대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IMF가 2023년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을 61.0%로 봤지만 실제 수치는 50.5%였다는 점도 반박 근거로 들었다.
IMF의 시각은 다르다. 우선 IMF가 주목한 수치는 중앙·지방정부 채무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한 일반정부부채(D2)다. IMF는 이 기준으로 한국의 부채비율이 올해 54.4%, 내년 56.6%, 2031년 63.1%로 높아질 것으로 봤다. 2027년 56.6%는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비기축통화국 11개국 평균 55.0%를 웃돈다. 청와대가 말한 것은 ‘현재의 낮은 부채비율’이고, IMF가 본 것은 ‘앞으로 예상되는 부채 증가의 경로’다.
이번 공방의 핵심은 현재 부채 수준이 아닌 ‘속도’에 있다. IMF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일반정부부채 비율은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3.0%포인트 오를 것으로 추정된다. 증가율로는 비교 대상 11개 비기축통화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고, 상승폭 8.7%포인트 기준으로는 가장 크다. 같은 기간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스웨덴처럼 부채비율이 내려가는 나라도 있다. IMF가 한국과 벨기에를 따로 거명하며 “부채비율이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것은 바로 속도 때문이다. 지금의 54.4%보다, 그 수치가 어떤 기울기로 60%대를 향해 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IMF의 지적을 요약하면 이렇다. 고금리와 에너지 충격이 겹친 환경에서 부채가 빠르게 늘면, 나중에 같은 폭의 조정을 하더라도 훨씬 더 급하고 거칠게 해야 할 수 있다. IMF가 최근 각국에 중동 사태에 따른 재정 대응을 권고하며 낸 원칙도 마찬가지다. 광범위한 보조금보다 취약계층을 겨냥한 타깃 지원을 하되, 일시적이어야 하고, 상황이 안정되면 재정 완충장치를 다시 쌓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금 쓰지 말라”는 경고라기보다, 쓰더라도 영구지출과 일시지출을 구분하고 중기 재정경로를 관리하라는 주문에 가깝다.
김용범 실장의 주장과 IMF의 분석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면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현재의 대차대조표를 설명하고 있고, IMF는 미래의 궤적을 묻는다. 청와대는 “한국은 아직 안전하다”고 하고, IMF는 “이 속도라면 나중엔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부채는 재무제표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세금, 연금, 복지, 산업투자의 우선순위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재정의 위험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로 수치가 아니라 속도로 먼저 신호를 보낸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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