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눌렀지만… 석유 최고가격제 출구전략 고심

3 hours ago 2

국제유가 불안에 지속 여부 논란
“장기간 운영땐 시장 왜곡 우려”

석유류 최고가격제 시행 한 달을 넘기면서 이 제도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중동 휴전 국면에도 국제유가가 좀처럼 안정되지 않으면서 단기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가정하에 도입된 극약 처방의 한계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가격제는 국내 기름값을 낮춰 소비자 부담을 줄였지만, 어느 때보다 에너지 절약이 필요한 시기에 기름 소비를 억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가격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은 끊이질 않고, 국제유가와 국내 공급가격 격차를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20일(현지 시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장보다 6% 이상 오르며 배럴당 95달러 수준에 거래됐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7% 넘게 오르며 90달러 선을 회복했다. 17일 종전 기대감에 급락했던 국제유가가 미국의 이란 선박 나포 소식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최고가격제 운영에 따른 정부 부담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장기간 이어지면 시장 기능 왜곡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출구 전략으로 비축유 방출이나 유류세 추가 인하 등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값 묶으니 소비감축 효과 작아” 억눌린 물가 한번에 터질수도

[‘최고가격제 버티기’ 언제까지] 석유 최고가격제 한달
국제유가 대비 국내 가격 상승 제한… “소비자 부담 줄며 절약의식 약해져”
정유사 손실 보전 막대한 세금 투입
‘완충효과’ 오래갈수록 부작용 확대… “가격 통제보다 간접지원 전환해야”

20일 서울 성북구의 한 주유소에 L당 2000원이 넘는 휘발유,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로 국내 기름값은 국제 유가보다 덜 올랐지만, 에너지 절약이 필요한 시기에 가격을 누르는 게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20일 서울 성북구의 한 주유소에 L당 2000원이 넘는 휘발유,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석유 최고가격제로 국내 기름값은 국제 유가보다 덜 올랐지만, 에너지 절약이 필요한 시기에 가격을 누르는 게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경기 수원시에서 성남시 분당구까지 차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남혁철 씨(39)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카풀’(차 함께 타기)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기름값 지출이 급격히 늘 수밖에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L당 2000원 안팎에 묶이자 생각을 바꿨다. 남 씨는 “한 달 기름값이 많아야 3만 원 정도 더 드는 수준이라 부담이 크지 않다”며 “이 정도면 그냥 차 가지고 혼자 다니는 게 낫겠다 싶다”고 말했다.

최고가격제로 국내 기름값 인상 폭이 제한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을 덜었지만, 그만큼 ‘덜 쓰자’는 절약 의식도 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지금 소비 절감을 해야 할 상황인데 일부에서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며 에너지 절약을 당부한 것도 이 같은 부작용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 가격은 잡았지만 소비는 그대로

2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2002.84원으로 집계됐다. 중동 전쟁 직전인 2월 28일(1692.89원)보다 18.3% 오른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 산정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휘발유 가격은 53.4% 뛰었다.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국내 기름값이 L당 2200원을 넘어섰을 것이란 관측이 있을 만큼 국제유가 대비 국내 기름값 상승 폭은 제한됐다.

문제는 이 완충 효과가 오래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는 점이다.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으면 굳이 차를 덜 타야 할 이유도 줄어든다. 특히 냉방 수요가 늘어나는 여름철을 앞두고 에너지 절약이 필요한 상황에서 지금처럼 가격을 눌러두는 방식이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는 이유다. 산업통상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후 휘발유 경유 소비가 지난해보다 12.4% 줄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소비 감축 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도를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 6개월간 제도 지속을 가정해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한 금액은 4조2000억 원. 매달 약 7000억 원을 투입할 수 있는 규모지만, 시행 한 달 만에 정유 4사의 누적 손실이 1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도 나온다. 유가가 오를수록 손실 보전 규모는 커지는 구조다.

올해 1분기(1∼3월) 결산을 마친 주요 정유사들은 최근 사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최고가격제에 따른 손실 산정 작업에 착수했다. 업계는 과거 싼값에 들여온 장부상 원가가 아닌, 현재의 ‘국제 시세’를 기준으로 삼아 손실을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들이 수출 대신 내수 시장에 석유제품을 우선 공급하면서 국제 시세 대비 L당 약 1000원에 달하는 판매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기준 마련에 미온적인 상황이다.

최고가격제가 종료된 이후 기름값이 갑자기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오랜 기간 눌러온 가격이 한꺼번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기름값이 덜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억누른 만큼 가격이 올라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 해외선 간접 지원… “출구 전략 마련해야”

해외 주요국들은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가격을 직접 누르기보다는 세금을 낮추거나 취약계층에게 보조금을 주는 식이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풀어 공급을 늘리고 있고, 일본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직접 가격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충격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부터 최고가격제를 어떻게 끝낼지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제도는 오래 끌수록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유류세 인하나 취약계층 지원처럼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비정상적인 전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한시적 조치인 만큼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이른 시일 내에 최고가격제를 종료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세종=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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