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 따져볼 새가 없다"…국민연금 수책위 고충, 매년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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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3월은 저희(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들)에게는 ‘죽음의 계곡’이나 마찬가지예요. 정기 주주총회가 3월에 다 몰려 있는데다, 주총 2주 전에야 안건이 공시돼서 시간이 너무 없어요.”

올해 정기 주총 기간에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들은 기업들의 주총 안건을 분석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기업 주총에서 ‘실질적’ 의결권 행사를 하려면 주총 안건을 분석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들이 공개하는 정보가 너무 적고, 주총 안건을 들여다볼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 (사진=국민연금공단)

주요 대기업 정기 주총, 매년 2~3월 ‘집중’

20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이후로 총 20개 기업들 정기 주주총회(주총)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날 정기주총을 개최한 기업은 신세계, 현대자동차, 포스코홀딩스,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LG에너지솔루션 등이다. 전날(지난 19일)에는 삼성전자, 삼성전기, 현대모비스, 제일기획 정기주총이 있었다.

지난 14일에는 기아, 삼성증권, 삼성물산(구 제일모직), 삼성바이오로직스 정기주총이 열렸다.

수책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3개 전문위원회 중 하나다. 나머지 2개 전문위원회는 투자정책 전문위원회, 위험관리·성과보상 전문위원회다.

수책위는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해서 수책위에 결정을 요청한 사안일 경우 수책위가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기금운용본부가 행사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데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만큼 중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다.

앞서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해 자체 판단해 찬성 표를 행사한 결과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제5조를 보면 의결권 행사 대상 기업은 △국내 상장기업의 경우 국민연금기금의 보유 지분율 1% 이상 또는 국내주식 전체 대비 보유비중 0.5% 이상 △해외기업의 경우 해외주식 전체 대비 보유비중 0.3% 이상인 경우다.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20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포스코홀딩스 유튜브 캡처)

“안건 분석시간 턱없이 부족…정보도 적다”

국민연금은 연간 정기주총 기간에만 600여개 기업들 주총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수책위는 총 9명이며 상근 전문위원 3명,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상근 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은 각각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에서 1명씩 추천한 사람들이다. 나머지 3명은 전문가 단체가 추천한 사람들이다.

이 9명 사이에서 의견이 나뉠 수 있지만 다수결 원칙으로 최종 의결권 행사방향을 정한다. 예컨대 5명 대 4명으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도 5명이 찬성한 쪽으로 결정되는 구조다.

문제는 대다수 주요 기업들의 정기 주총이 2월 말에서 3월 말까지 한 달 남짓 되는 기간에 집중돼 있어서, 수책위원들이 각 기업들의 안건을 충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주총 안건은 주총이 열리기 2주 전에 공시된다. 수책위 위원들이 수십개 기업들의 안건을 단 몇 주 동안 분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수책위가 개최되기 하루 전날 밤에 주총 안건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작년 9월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 실장은 “배당, 이사 선임에 대한 안건, 합병·분할 등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기업 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경우 회사 의견을 충분히 듣고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며 “다만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의 양이 너무 적거나 없는 경우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결권 행사가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뤄지려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들이 주총 안건을 분석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정기주총이 2월 말에서 3월 말까지 한 달 남짓 되는 기간에 다 집중된다”고 말했다.

이어 “안건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주총을 분산해서 개최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기업들은 반응이 없거나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법적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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