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굴리면 쥐꼬리 이자뿐" … ETF로 계좌 꽉 채우는 연금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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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박모씨는 그동안 퇴직연금의 안전자산 한도(30%) 이상을 정기예금으로 굴려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기예금 만기로 회수한 투자금을 미국 유망 기술주 위주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넣고 있다. 박씨는 “주요국 증시의 대표지수에 간접투자만 해도 예금 이자를 훌쩍 뛰어넘는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시기”라며 “채권혼합형 ETF라도 담아서 조금이라도 노후 자산을 더 불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예금 외면하는 연금개미

증시 투자 열기에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의 적립액은 145조1835억원으로 올해 들어 22조원 불어났다. 안전자산에서 자금을 빼 ETF와 주식형펀드 등에 투자하는 연금개미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기간 원리금 보장형 상품 적립액(363조5506억원)은 약 10조원 줄어들었다.

실적배당형 적립액은 2024년 말만 해도 75조1982억원이었지만 그 후 1년3개월 만에 93.1% 급증했다. 증권사(99.1%)보다 투자성향이 보수적인 고객이 많은 은행(102.8%)에서 실적배당형 적립액의 증가율이 높았을 정도로 ‘머니 무브’에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실적배당형 상품의 수익률도 높아졌다. 지난 1분기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실적배당형 1년 수익률은 22.79%로 2024년 말(7.7%)보다 15.09%포인트 뛰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한 사람들이 성과를 내면서 다른 가입자들도 위험자산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올 1분기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500조원대로 커진 배경이다.

◇연금 방치하면 물가상승률 하회

실질임금 상승률이 점점 둔화하는 것도 퇴직연금 운용 전략을 공격적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자 한 명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60만6000원으로 전년보다 0.9% 올랐다. 실질임금은 2022~2023년 연이어 하락했고 2024년에는 0.5% 상승하는 데 그쳤다. 실질임금은 물가 변화를 반영한 지표로 내 월급의 실제 구매력을 보여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회사가 증가한 것도 퇴직연금 시장 판도를 뒤흔든 요인으로 꼽힌다.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퇴직급여가 대폭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직전에 DC형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다.

DB형을 유지하면 퇴직 시점의 평균임금을 바탕으로 퇴직급여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가입자가 직접 자금을 굴리는 DC형과 달리 DB형은 회사가 운용 방법을 결정한다. 임직원 전체 수익률이 달려 있다 보니 원리금 보장형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제 환경과 고용 구조의 변화로 DB형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DC형으로 전환해 직접 투자에 나서 노후 자산을 불리려는 수요가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강자 증권사, 은행권 위협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금융사 간 경쟁 구도도 바뀌고 있다. 올해 1분기 퇴직연금 시장에 신규 유입된 12조원 가운데 10조원가량이 증권사로 흘러갔다.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141조원으로 2022년 이후 3년여 만에 91.9% 급증했다. 일반 증권 계좌처럼 DC형과 IRP 계좌에서도 실시간 ETF 거래를 할 수 있는 점을 내세워 가입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DC형 적립액 1위인 미래에셋증권이 대표적이다. 이 증권사는 올 들어서만 4조원 이상을 끌어모으며 3위권인 국민·하나은행과의 격차를 7조원대로 좁혔다.

10년 이상 주도권을 쥐었던 은행들은 증권사들의 거센 추격을 받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은행들은 2010년대부터 대기업 퇴직연금을 유치하고 세제 혜택이 커진 IRP를 내세워 보험사들을 밀어내고 시장 지배력을 키워왔다. 원리금 보장 상품 비중이 큰 보험사의 위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1분기 처음으로 신한은행에 퇴직연금 1위 자리를 내줬다.

김진성/오유림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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