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 이찬혁 2년 9개월 만에 정규 솔로앨범 2집 들고 돌아와
‘죽음’에서 시작된 사랑 풀어내
뮤비 ‘디스토피아적 영상’ 눈길
“성장과 넓어진 스펙트럼 인상적”
흥겨운 ‘다리꼬지마’, ‘라면인건가’ 등을 부르던 악뮤의 귀여운 소년은 솔로 활동에선 상당히 진중한 행보를 보여준다. 그는 2022년 10월 첫 솔로 앨범 ‘에러(ERROR)’에서 ‘자신의 죽음’을 내밀하게 그려냈다. 이후 2년 9개월 만에 나온 이번 앨범은 더 나아가 ‘타인의 죽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담았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남겨진 이의 결핍과 그 속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그다운 방식으로 풀어냈단 의견이 나온다.
● 이상적인 사랑이란 존재하는가
첫 트랙 ‘시니 시니(SINNY SINNY)’는 마치 소설의 프롤로그 같다. “Man who lived in Seoul city(서울에 살던 남자). 그는 우릴 떠났지.” 가상의 인물을 설정해 상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뮤지컬과 가스펠 사이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풍성한 코러스가 이채롭다. 이어지는 곡 ‘돌아버렸어’는 레트로한 신스 멜로디에 “다들 내가 춤을 추는 줄 알지만… 그냥 돌아버렸어”라는 기묘한 가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타이틀곡 ‘비비드라라러브’는 이번 앨범의 주제 의식이 가장 잘 집약돼 있다. ‘진실하고 이상적인 사랑이 실재하는가’라고 묻는 나직한 노랫말과, 무거운 스트링에 어울리는 보컬이 어우러지며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뮤직비디오가 놀랍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치우는 사람들, 꽃에 둘러싸여 춤추는 여성 등 비일상적인 이미지가 디스토피아적 영상미를 구현했다.
4번 트랙 ‘티비쇼(TV Show)’에선 이러한 상실감이 ‘화면 속의 가식적 자아’에 대한 자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토크쇼 배경음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가 허탈한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어지는 ‘멸종위기사랑’은 달콤한 멜로디와는 달리 냉소적인 메시지가 귀를 사로잡는다.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왔다네 정말로.” 하지만 사랑의 끝을 인류의 위기로 격상시킨 이찬혁의 시도에선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 결핍을 인정하면 보이는 세상 앨범 후반부로 접어들면 몽환적인 정서가 짙어진다. 뉴 잭 스윙의 경쾌함을 입힌 ‘이브(Eve)’는 “두 쪽이 나도 하늘이 우릴 가를 수 없는” 사랑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어지는 ‘앤드루(Andrew)’는 차분한 멜로디로 내면의 고백을 담아낸다. 사람들을 꼬리 잘린 새에 비유한 듯한 ‘꼬리’는 종결 직전의 여운을 극대화한다. 꼬리 없는 새가 길을 찾지 못하고 맴돌듯, 사랑이란 방향성을 잃어버린 우리가 가질 혼란스러움을 묘사한 듯하다.앨범은 보코더(vocoder)를 활용한 기계음이 두드러지는 곡 ‘빛나는 세상’으로 마무리한다.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란 가사는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사랑을 의심하고, 조롱하고, 갈구하던 그는 결국 사랑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야 만다. 이로써 앨범 ‘에로스’는 모자람을 받아들여도 그 자체로 조화와 빛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표현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번 앨범에 대해 “신스팝 위주로 채워졌던 1집에 비해 음악적 일관성은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찬혁의 성장과 넓어진 스펙트럼이 인상적”이라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와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듯한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음악적 디스코그래피가 더욱 궁금해진다”고 평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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