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주도 한의난임사업
한약 처방·침·뜸·맞춤형 상담
자연임신·건강한 출산 도와
양방에 한의진료 병행하기도
작년 태어난 아기 5명중 1명
정부 지원 난임시술 통해 출산
“극심한 두통을 유발하던 호르몬 요법을 중단하고 자문해 봤습니다. ‘지금 내 몸은 정말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나?’ 그 답을 찾기 위해 선택한 한의난임사업이 제게 두 아이의 부모가 되는 기적을 선물해 줬습니다.”
다낭성 난소증후군과 무배란 장애로 오랜 기간 난임을 겪었던 이혜정 씨가 연사로 섰다. 2018년 결혼 후 첫째 아이를 품에 안았으나, 이후 자궁외임신으로 오른쪽 나팔관이 막히고 증상이 악화되는 아픔을 겪었다. 둘째를 원해 시작한 호르몬 치료는 구토와 부종, 극심한 두통 등 신체적 부작용만 남긴 채 그를 지치게 했다.
무리한 시술보다 몸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한의난임사업에 참여했다. 주 1~2회 한의원을 찾아 침과 뜸 치료를 받고 맞춤형 한약을 복용했다. 남편이 치료에 함께하면서 혼자 감당하던 임신 준비의 부담을 나누고 심리적 안정도 얻었다. 그 덕분에 한 달 만에 생리 주기가 정상화됐고 한의사의 지도에 따라 운동과 식이조절을 병행한 결과 체중 감량에도 성공했다. 몸 상태가 눈에 띄게 회복되면서 치료 5개월 뒤 자연 임신에 성공했고 현재 두 아이의 부모가 됐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한의약 치료가 새로운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주관한 ‘2026년도 한의난임사업 성과대회’에서는 치료 기회를 넓히기 위한 지자체 지원 정책과 운영 성과 사례들이 공유됐다.
2024년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국가 지원 등 탄력을 받은 지자체들은 현장 요구를 반영해 지원 기준을 잇달아 손질하고 있다. 경기도와 제주도는 조례 개정을 통해 만 44세 이하였던 연령 제한을 폐지하고 사실혼 부부로 대상을 확대했다. 서울 강서구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 등 양방 보조생식술과 한의 진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완화했다. 시술 횟수 제한과 소득 기준도 폐지해 더 많은 난임 부부가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이혜경 서울 강서구보건소 주무관은 “정책 문턱을 낮추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업 내용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며 “보건소와 지역 한의사회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중심으로 홍보를 강화한 결과, 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원인 불명 난임 부부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부 지원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동은 2022년 전체 출생아의 9.3%(2만3122명)에서 2025년 19.2%(4만8981명)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신생아 5명 가운데 1명은 난임 지원에 힘입어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왕형진 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은 “난임 극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의약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우수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한의난임사업 효과는 의료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에서 7년 연속 최다 임신 기록을 올린 한경훈 산수유한의원 원장은 “양방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지만 만성 피로나 냉증 등으로 임신을 준비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지원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동안 혜택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한 원장이 진료실에서 만난 9년 차 난임 부부의 사례는 검사 수치로 포착되지 않는 건강 문제를 다스린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 부부는 난임센터 검사에서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음에도 임신이 되지 않아 고통받고 있었다. 한 원장은 영상과 숫자 너머에 있는 환자의 몸 상태에 주목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일하는 요리사로 상반신의 열감과 달리 아랫배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남편은 교대 근무로 인한 피로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가를 만나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원장은 3개월간 맞춤 한약을 처방하고 주 1~2회 침구 치료를 진행했다. 아내는 만성 요통을 치료하면서 철저한 식이 조절로 13㎏을 감량했고, 남편은 수면의 질을 높이는 처방을 받았다. 몸에 온기가 돌고 피로가 사라지면서 부부의 일상에 활력이 되돌아왔고, 복약을 마친 지 두 달 만에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한 원장은 “인위적인 시술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부담 때문에 첫째를 어렵게 낳은 뒤 둘째를 포기하는 부부가 적지 않다”며 “한방 치료로 몸의 자생력을 회복하면 신체적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이후 자연 임신으로 다둥이 부모가 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의 치료가 난임 시술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고 임신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신영 화성시한의사회 난임위원은 “침 치료는 골반강 내 혈류를 개선해 자궁내막 상태를 도와 착상률을 높이고 뜸 치료는 하복부 냉증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양방 보조생식술과 한방 치료를 병행하면 대량의 호르몬제 투여로 자궁내막이 얇아지는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고 난자 채취 후 흔히 발생하는 난소과자극증후군(OHSS)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의 치료는 단순히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것을 넘어 유산 위험을 낮추고 건강한 출산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조수영 아들딸한의원 원장은 “시험관 시술에 성공하고도 임신 9주 차에 안타깝게 유산한 다낭성 난소증후군 환자가 있었다”며 “아내는 태아를 거부하는 성향의 면역세포(NKL) 수치가 높았고 남편도 정상 형태의 정자가 전체의 3%에 불과해 운동성이 크게 떨어지는 등 복합적인 난제를 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궁 환경을 개선하고 임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한방 치료를 이어간 결과 올해 4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고 전했다.
의학적으로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받은 난소 기능 저하 환자가 한의 치료로 반전을 이뤄낸 사례도 있다. 조 원장은 “실제 나이는 35세였지만 시험관 시술 전 검사에서 난소 기능이 이미 40대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며 “집중 치료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진통제 없이 월경을 보낼 정도로 자궁 환경이 빠르게 개선됐고 자연 임신에 성공해 현재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의난임사업이 저출생 대응 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국비 지원의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양방 난임시술에 비해 지원 예산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또 한방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객관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과 양·한방 협진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석배 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저출생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며 “지역사회에서 검증된 한의약 건강돌봄 모델이 국민 건강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용어] 한의난임사업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의 전신 건강을 증진하고 자연 임신을 돕기 위해 한약 처방과 침·뜸 치료, 상담 등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국가 지원 근거가 없어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지역별 편차가 컸으나, 2024년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국가 재정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정부가 한의약 난임치료 바우처 등에 국비를 일부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난임 부부들은 지자체뿐 아니라 국가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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