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목소리에 전율이 일었다...베르넹의 오페라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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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정각이 되자 장내 어나운스먼트가 들려온다. 오늘 공연을 하는 테너 벤자민 베르넹이 목 상태가 좋지 않지만,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안내가 나온다. 일본 도쿄 산토리홀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오늘 공연의 제목은 <Bemjamin Bernheim in Concert>.
마크 르로이 카라타위(Marc Leroy-Calatayud)가 지휘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중 서곡과 3막 폴로네즈를 먼저 연주했는데 서곡은 템포가 좀 이상했다. 레가토가 더 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 프랑스 리릭 테너 벤자민 베르넹이 등장했다.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그는 ‘예브게니 오네긴’ 중 렌스키의 아리아 ‘나의 황금 같던 날은 어디로 가버렸나’를 불렀다. 오네긴과 결투를 앞두고 죽음을 예감하며 부르는 이 처절한 아리아를 베르넹은 곱게 불렀는데 뜨거운 열정이 부족했다. 공연은 베르넹이 충분히 목을 쉴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연주 후 아리아를 부르는 오페라 콘서트로 진행됐다.

최근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전통적인 오페라 가수의 콘서트 형식이다. 예전에는 도밍고와 파바로티, 게오르규, 카우프만이 이런 스타일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공연을 서울에서 한 적이 있다.

‘돈 파스콸레’ 중 서곡을 연주한 후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의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렀는데, 이 곡에서는 중음에서 약간의 음이탈도 일어났다. '아, 이래서 장내 방송을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음은 너끈했다. 렌스키와 네모리노의 아리아가 특별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들려준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 중 제노바의 젊은 귀족 아도르노의 아리아 ‘자비로운 하늘이시여, 그녀를 되돌려주세요!’에서 가창이 빛을 발하며 드디어 살아났다. 그는 탱탱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가브리엘레 아도르노가 얼마나 아멜리아를 사랑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탄력적인 음성으로 돌아왔다.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이어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인테르메조(간주곡)를 연주했는데 융단을 두른 듯한 푸근한 연주였다. 1부 끝 곡으로 베르넹이 부른 푸치니 ‘토스카’ 중 카바라도시의 ‘오묘한 조화’를 불렀다. 우아미가 있는 가창이었고 베르넹은 결코 멋을 부리면서 부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좋았다.

1부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했다면, 2부는 프랑스 오페라로 채워졌다. 마스네의 '돈키호테' 중 5막 인터루드로 시작된 2부는, 이어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중 나디르의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을 첫 아리아로 선보였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과거 니콜라이 겟다의 나디르를 듣는 듯한 황홀함과 고귀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섬세하게 부를 수 있을까? 요즘 정말 듣기 힘든 귀한 가창이었다.

이어진 오페라는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으로 시작됐다. 이후 마크 르로이 카라타위의 지휘 아래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막의 앙트락트(간주곡)를 섬세하고 부드럽게 연주하며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 연주는 사랑스러운 감정을 한껏 자아냈다. 이어 로미오가 줄리엣의 발코니 앞에서 부르는 가장 중요한 아리아인 '사랑, 사랑... 태양아 떠올라라'는 사랑에 빠진 미소년 로미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제 마지막 프로그램만 남았다. 마스네의 '베르테르' 중 프렐루드(전주곡)와 오시안의 노래 중 '봄바람이여, 왜 나를 잠 깨우는가?'가 연주됐다. 이 곡을 베르넹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베르넹은 대단히 아름다운 선율미와 프랑스 남자 특유의 뛰어난 딕션을 더해, 그야말로 전율이 일어나는 대단한 오페라 장면이 상상될 정도로 아찔하게 불러 냈다.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지난 1월 14일 도쿄에서 열린 '벤자민 베르넹 인 콘서트' 공연 사진 / ⓒKiyonori Hasegawa

도쿄=장일범 음악평론가·라디오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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