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고 때문에 여행 떠나기 불안했는데 임시공휴일 지정 이후 주변에서 다시 여행 계획 세우길래 이젠 가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지난해 연말 비상계엄, 탄핵 정국에 이어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던 여행 심리가 살아나고 있다. 오는 27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6일간의 연휴가 이어지면서다. 당초 여행 불안을 이유로 국내로 여행지를 변경하거나 일정을 연기하는 등 해외여행 수요 급감을 우려했던 여행업계는 반색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참사 직후 여행 불안 확산으로 신규 예약률이 급감했었다"면서 "국내 여행 등 내수 활성화 취지로 지정된 임시공휴일이 앞선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면서 평년 수준으로 수요가 회복했다"고 귀띔했다.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3일간 짧았던 설 연휴가 6일 연휴로 길어졌다. 31일 하루만 연차를 쓰면 최장 9일간 쉴 수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31일을 전사 휴무일로 지정하거나 휴가를 권장해 연차 하루가 소중한 직장인에게 해외여행 적기로 꼽히기도 했다.
이 같은 여행 수요 회복으로 올해 설 연휴 기간 국제 운항편이 많은 인천공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역대 설·추석 연휴 중 가장 많은 21만4000명(도착편 포함)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열흘간 국내 공항 6곳에서 134만292명(출발 기준)이 해외로 떠날 것으로 전망됐다.
연휴 기간 인기 지역은 동남아, 일본, 중국 등 단거리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트립닷컴은 이번 설 연휴 기간(25~30일)에 해외여행은 작년 설 연휴 대비 73.15%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연휴 기간 가장 많이 예약한 지역은 역시 일본이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순으로 가장 많이 예약됐고, 방콕과 상하이, 홍콩이 뒤를 이었다. 이어 삿포로와 나트랑, 호치민, 다낭이 순위에 올라 일본과 베트남의 인기가 여전히 견고함을 확인했다. 모두투어의 1월 출발 예약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예약 중 베트남(25%) 1위, 이어 일본이 21%다.
수요 급증으로 항공권 가격은 치솟았다. 트리플 '맞춤 일정 찾기'에 따르면 이번 연휴 기간 이번 연휴 기간 일본 오사카 항공권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연휴 기간 직후인 2월 첫 주엔 적게는 28만원~ 많게는 44만원대로 2~4배가량 가격이 높다. 연휴 시작이 이틀가량 남아 가격이 더 높게 나올 수 있음을 감안해도 차이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연휴는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단거리 지역 예약률이 상승세를 보인다"면서 "9일간 연휴가 가능한 만큼 유럽과 미주노선 수요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연말 여행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유럽과 일본을 앞질렀다. 정치적 불안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는 소비자 심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당선, 탄핵 정국 등 국내외 정치 이슈로 관심도가 급락한 바 있다.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 인사이트는 지난해 마지막 주 기준 국내 소비자의 여행지 관심도는 대양주(호주·뉴질랜드 등)가 42%로 제일 높았고, 미국(캐나다 포함)이 40%로 그다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38%), 일본(37%), 동남아(33%) 순이었고, 중국(11%)은 아프리카(10%) 수준에 머물렀다. 미국이 유럽과 일본을 앞지르고 대양주에 근접한 것은 여행지 선호도 조사 이래 매우 드문 일이라는 설명이다. 국내 정치의 혼란과 환율 급등으로 해외여행 심리가 냉각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단기간에 연중 최고치로 회복됐다.
컨슈머 인사이트는 "미국이 트럼프 2기의 출범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반면 불안한 한국 정치가 도피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기보다는 단기 트렌드로 그칠 가능성 높아 보인다. 실제 여행 예약이나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