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학대 끔찍했다”...교회사제 천인공노할 범죄, 대신 고개 숙였던 교황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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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 이재협·김호열·이창욱·가비노 김 옮김 / 가톨릭출판사 펴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베드로광장이 보이는 바티칸 발코니에서 동성 커플 축복 승인을 발표하는 모습. [AFP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베드로광장이 보이는 바티칸 발코니에서 동성 커플 축복 승인을 발표하는 모습. [AFP = 연합뉴스]

“온유한 사랑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진정한 힘입니다. 가장 강인하고 용감했던 이들이 바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도 온유한 사랑으로, 또 용기로 이 싸움을 이어 갑시다.”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가 전쟁과 독재,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권력과 무력이 아닌 온유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유럽 공동체와 국제 사회는 대화와 협상, 중재의 길을 찾는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십만 명의 생명보다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수는 없다. 너무나 많은 고아가, 너무나 많은 미망인이, 너무나 많은 난민이 생겨났고, 너무나 많은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어느 날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왼쪽)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디저트를 나눠 먹는 모습. [사진 = 가톨릭출판사]

1970년대 어느 날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왼쪽)이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디저트를 나눠 먹는 모습. [사진 = 가톨릭출판사]

프란치스코 교황이 6년간 직접 집필한 자서전 ‘희망’(원제 ‘Hope’)이 전 세계 100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세계 교회와 인류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열정과 사랑, 용기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중에서도 특히 교황은 삶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인 희망을 중심으로 성직자 생활 가운데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많은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본래 이 책은 교황 사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올해 ‘희망의 순례자들’을 주제로 가톨릭교회의 희년을 맞이해 특별 출간하기로 결정됐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이후 예수회에 입회해 30대 초반에 신부가 됐다.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거쳐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에 임명됐고,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그리고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돼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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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여느 자서전처럼 교황의 생애 주기를 따라 전개된다.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부모 세대가 겪은 전쟁의 아픔과 유년기 경험, 청년 시절에 했던 다양한 고민이 소개된다. 예수회 공동체에서 열정적으로 사목 활동을 했던 일들이나 교황 재임 중 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과 연대해 노력해온 일들은 그가 늘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젊은 신학생 시절 사진 등 그간 공개된 적 없는 교황의 사진들도 만나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눈앞의 현실인 폭력에 몸소 온유한 사랑으로 맞서왔다. 그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을 ‘늘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살았던 참으로 암울한 시절’이라고 회상하면서도, 한 명의 성직자로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던 일화들을 털어놓는다.

캄포 데 마요 군사지대의 검문소들을 지나 사람들을 몰래 이동시켰던 일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군인들은 그를 죽일 것이고, 그다음엔 저를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독재 시절 수많은 사제가 목숨을 잃었고, 주교들마저 순교의 길을 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이 열 여덟 살 때 받은 첫 신분증. [사진 = 가톨릭출판사]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이 열 여덟 살 때 받은 첫 신분증. [사진 = 가톨릭출판사]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 날 아침에도 교황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직접 주교황청 러시아대사관으로 향했다.

알렉산드르 아브데예프 대사를 만나 폭격 중단을 호소하면서 “재위 기간 중 세 차례 만난 적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의 작은 실마리라도 내준다면 즉시 모스크바로 갈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답신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시기 교황의 전화를 받았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듬해와 지난해 10월 바티칸을 찾았고, 교황청은 다방면으로 연대와 헌신의 손길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책에서 교회의 과오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사제들의 아동 성 학대 같은 끔찍한 범죄로 뼈아픈 참회를 해야 했던 때가 대표적이다.

그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에게 깊은 고통과 무력감을 안겼고, 그 가족들과 공동체 전체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절규는 오랫동안 무시당하고 감춰지고 침묵 속에 묻혀 왔다”며 “당연히 가해자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알고도 묵인하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주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짚었다.

삼촌의 결혼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뒷줄 오른쪽 세 번째)과 가족들. [사진 = 가톨릭출판사]

삼촌의 결혼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뒷줄 오른쪽 세 번째)과 가족들. [사진 = 가톨릭출판사]

실제로 교황은 재위 기간 중 여러 성직자의 신분을 박탈했고, 워싱턴 대교구장이었던 시어도어 매캐릭 같은 전직 추기경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교황 재임 초기부터 몇몇 사제들이 저지른 모든 악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깊이 느꼈다”며 “모든 사건은 지금도, 앞으로도 가장 엄중하게 다룰 것이며, 우리는 이 문제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황은 ‘부끄러움의 은총’이 지금껏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이끌어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는 은총이다. 내게 걸맞지 않은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에게서 과분한 감사를 받고 있다”며 “이것이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깊은 부끄러움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밀려온다”고 밝혔다.

그가 희망을 통해 모두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변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며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을 결코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어떤 방식으로든 회복시킬 방법을 찾으신다. 결코 당신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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