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 드리운 불황의 그늘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4년 만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대박’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지만, 허리를 받쳐줄 ‘중박’ 영화들이 사라지고 외화까지 약세를 보이면서 시장 회복세에 제동이 걸렸다.
올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화 시장 경색으로 전반적인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비상계엄 사태로 지속되는 정국 혼란 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영화관을 찾는 발길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신작과 <아바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등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의 귀환은 영화계가 기대하는 반전카드다.
지난해 관객 수, 극장 매출 다 꺾였다
24일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관 누적 관객은 전년 대비 1.6%(201만명) 줄어든 1억2313만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5952만명으로 급감한 연간 관객수는 2021년 6053만명, 2022년 1억1281만명, 2023년 1억2514만명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지난해 다시 주춤했다. 작년 총 관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한국영화 전성기였던 2억2666만명과 비교하면 절반(54.3%)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상반기에 <파묘>(1191만)와 <범죄도시4>(1150만) 등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배출하며 축포를 쐈지만, 300만~500만명 수준의 중박 영화가 자취를 감추며 흐름이 끊겼다. 추석 연휴에 개봉한 <베테랑2>(752만)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었던 것이다. 영진위 측은 “여름 성수기에 한국 대작 영화가 부재했고, 겨울 시즌에도 메가 히트작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극장 매출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극장 총매출액은 1조1945억 원으로 직전 해(1조2614억원)보다 5.3%(669억원) 감소했다. 아이맥스 등 특수관 매출이 줄어든 탓인데, 여기엔 지난해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 등의 파업이 영향을 미쳤다. <오펜하이머>,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 등 음향·시각효과를 앞세워 특수상영관에서 장기상영한 해외영화가 많았던 2023년과 비교해 지난해엔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는 흥행작 10위 안에 한국영화가 7편을 차지하는 등 외화 약세가 두드러졌다.
올해도 회복 불투명, 믿을 건 ‘거장의 귀환’
영화계 안팎에선 올해도 회복이 여의치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들썩이는 물가에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가 영화 소비심리도 옥죄고 있어서다. 지난달 개봉 이틀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영화’ 기대감을 모았던 <하얼빈>의 관람객이 이달 들어 평일 평균 3만명대로 줄어든 게 단적인 예다.
제작·투자·배급 등 시장 전반에 투자가 얼어붙으며 제작·개봉 편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뤘던 ‘창고 영화’들도 지난해 대부분 스크린에 걸린 터라 올해 개봉영화는 작년보다 더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진위 한국영화 제작상황판을 보면 이달 기준으로 올해 개봉을 예정한 영화는 23편에 불과하다. 많게는 연간 10편의 신작을 선보였던 CJ ENM이 내놓는 작품도 두 편에 불과하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매년 120~150편 정도의 영화가 제작됐는데, 요즘은 투자가 막힌 분위기”라고 했다.
영화계는 신작 <미키 17>과 <어쩔수가없다>를 내놓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값에 기대를 걸고 있다. 최근 극장가에 작품성이 보장된 영화에 티켓 값을 지불하려는 관람 트렌드가 굳어진 만큼, 거장의 작품 소식이 극장으로 발길을 재촉할 수 있다는 것. 전작들이 모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아바타: 불과 재>,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딩>, DC스튜디오의 <슈퍼맨> 등 할리우드 대작들도 한국 영화의 빈 자리를 채운다.
영화제작 투자 물꼬를 트기 위해 100억원을 투입하는 영진위의 중예산제작지원에도 눈길이 쏠린다. 순제작비 20억~80억원 사이의 중예산 장편영화 제작을 촉진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시행되는 사업으로, 전날 열린 사업설명회에 영화감독 등 시장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한상준 영진위원장은 “한국영화 허리인 중예산영화 지원은 어려운 영화계에 수혈과 같다”면서 “천만 영화 한 편보다, 백만 영화 여러 편이 제작될 때 고용하는 스태프 숫자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