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벤처캐피탈(VC)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펀드 조성, 투자 집행, 포트폴리오사의 성장 지원, 엑시트까지 업무 전반을 끌고 가는 ‘수석 심사역’이 꼽힙니다. ‘심(審)봤다!’는 VC 업계의 산삼 같은 존재들인 수석 심사역들의 생각을 담은 시리즈입니다. 심사역을 뜻하는 살필 심(審)의 의미도 있습니다. 각 하우스 수석 심사역과 만나 그들이 단순히 딜(deal) 소싱을 넘어 펀드 전체 전략과 운영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지난해 창업자의 논문에 흥미가 생겨 콜드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더라고요. 기존 주주 등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소개를 받고자 했는데 그때도 답이 없었어요. 올해 여름이 돼서야 만날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투자를 집행하게 됐습니다.”
대표 포트폴리오인 국내 로봇 제조 개발 기업 ‘라이온로보틱스’에 어떻게 투자하게 됐다고 묻자 홍상우 SBVA 수석심사역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그는 원하는 딜(deal)이 있다면 ‘삼고초려’의 자세로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는 편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홍 수석의 이런 성격은 전공이 아닌 분야 딜을 발굴할 때도 나타난다. 그는 “기계공학 전공자인 만큼 평소 관련 분야에 흥미가 크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검토하는 편”이라며 “이 경우 직접 경험하고 익히거나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거나 해당 업계에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몸담은 SBVA는 2000년 소프트뱅크그룹(SoftBank Group) 산하의 창업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SoftBank Ventures Asia)로 한국에 설립됐다. 2023년 6월에 손태장 미슬토 회장과 이준표 SBVA 대표, 타이라 아츠시 미슬토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한 싱가포르 기반의 투자 회사 디에지오브(The Edgeof)에 인수되며 독립했다.
![]() |
홍상우 SBVA 수석심사역. (사진=SBVA) |
PE에서 VC로…“스타트업 조력자 되고파” 홍상우 수석은 사모펀드(PE)에서 일하다 지난해 4월 SBVA에 합류하면서 벤처캐피털(VC) 업계에 입성했다. 홍 수석은 “PE에 있기 전부터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고 진짜 하고 싶은 투자를 해야겠다 싶어 VC 업계로 오게 됐다”며 “스타트업은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넓히는 일을 하는데 이에 투자하면서 이런 꿈을 조력자로서 함께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요 포트폴리오로 사족보행 로봇을 개발한 ‘라이온로보틱스’와 바나듐이온배터리(VIB) 전문 기업 ‘스탠다드에너지’가 꼽힌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최근 SBVA, 산은캐피탈, IBK벤처투자 등으로부터 23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그는 회사가 차별화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게 강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SBVA 전 세계 100여 개가 넘는 포트폴리오 회사를 육성하며 해외 투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스타트업은 기술이 아무리 좋다 해도 반드시 성공하지 않는다”며 “해당 기술로 적절한 시장과 양질의 레퍼런스를 찾는 게 중요한데 우리는 그 기술이 진짜 상용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는 이외에도 대형 VC임에도 포트폴리오사의 성장 전략을 함께 고찰하는 점도 장점이라 꼽았다. 그 역시 포트폴리오사가 제시한 성장 로드맵을 공유 받아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략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는 “조직 구성, 자본 조달, 제품 양산 등 세밀한 부분까지 스타트업과 함께 고민하는 편”이라고 생각을 꺼냈다.
재무적 투자 넘어 밸류업 기여가 VC 본질
SBVA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소버린 AI 유니콘 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는 ‘넥스트 유니콘 프로젝트’의 알파코리아소버린AI펀드 운용사(GP)로 선정됐다. 해당 펀드에는 쿠팡과 모태펀드가 각각 750억원을 출자해 15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
홍 수석은 해당 펀드의 핵심운용인력으로 참여한다. AI 기업뿐 아니라 AI와 맞물려 기존 산업 지형을 변화시키는 회사에도 투자할 생각이다. 그는 “AI 시장은 기술이 빠르게 변하지만 이 중에서 데이터, 훌륭한 인력풀 등 우리나라가 지닌 고유한 장점이 있다”며 “이 펀드를 통해 많은 스타트업 투자하면 이들이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할 거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번 펀드를 추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VC로서 단순히 심사나 투자를 넘어 진심으로 창업가의 고민을 같이 나눌 수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VC가 투자를 집행할 때 단순히 재무적 투자자로 자금을 공급하는 걸 넘어 포트폴리오사의 밸류업에 더 기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VC 투자를 하며 쌓은 경험으로 스타트업이 가진 기술력과 인재가 시장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VC의 본질적인 역할”이라고 했다.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SBVA는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미래 함께 일할 후배 심사역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이 기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려운데,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평소에 꾸준히 학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또한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성향이 적합한 직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