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체제 존립 기로…‘36년 철권통치’ 이란 하메네이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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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13일(현지 시간) 테헤란에서  TV 연설을 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시온주의자(이스라엘) 정권이 전쟁을 일으켰다”라며 “그들은 큰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2025.06.14. [테헤란=AP/뉴시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13일(현지 시간) 테헤란에서 TV 연설을 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시온주의자(이스라엘) 정권이 전쟁을 일으켰다”라며 “그들은 큰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2025.06.14. [테헤란=AP/뉴시스]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18일(현지 시간) “전투가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지만 제거하지 않고 있다”며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자 내놓은 반응이다.

하메네이는 입법, 행정, 사법 3부의 위에 있는 이란의 최고 권력자다. 신정일치인 이란에서 종교적으로 신의 대리인을 맡고 대통령 인준·해임권까지 갖고 있다. 대통령은 4년에 한번 국민 투표로 뽑지만 최고지도자는 종신제다. 마수드 페제슈키안 대통령이 대외적으로는 국가 원수지만, 하메네이에게 이란 대내외 정책의 최종 결정권이 있다. 사법부 수장, 국영 언론 경영진, 내각 등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1939년 평범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혁명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란 팔레비 왕조에 맞서 여러 차례 투옥되며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혁명 직후 1981년 대통령으로 선출돼 7년간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다.

호메이니가 사망한 뒤 1989년 최고지도자로 발탁됐을 당시만 해도 전임자에 비해 대중적 호소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해 약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철권을 쥐고 반대파 관리에 나서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의 카림 사다드푸르는 “하메네이가 지난 100년 동안 가장 강력한 이란인 다섯 명 중 한명으로 변모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특히 혁명 이후 체제 수호를 위해 창설된 최정예 부대 이란혁명수비대(IRGC)를 통해 내부 단속은 물론 대외 강경책을 폈다.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 등 중동 일대 민병대를 지원해 친(親)이란 무장단체 ‘저항의 축’을 만들었다. 핵 프로그램 개발도 적극 추진했다. 1957년 친(親)서방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 나간 것. 2000년대 초 고농축 우라늄의 농축을 일시 중단했으나 2006년 재개했다.

로이터통신은 “하메네이의 리더십 스타일은 이념적 경직성과 전략적 실용주의를 혼합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생존이 위태로울 때는 기꺼이 굽히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하메네이는 2015년 경제제재 완화를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총 6개국과 이란 핵합의(JCPOA)를 체결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당시 8년간 이어진 테헤란 공습과 지상전으로 호메이니가 1988년 휴전을 수용한 것을 두고 “영웅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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