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교육 사업을 하는 A 회장은 최근 80억원이 넘는 성동구 주상복합 아파트를 중개법인에 내놨다. 70세가 넘은 A 회장이 여생을 살기 위해 택한 새로운 거처는 용산구 한남동에 조성되는 시니어주택 ‘소요한남 바이 파르나스’다. 50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내기 위해 기존 아파트를 팔고, 입주(2029년)까지 남은 3년간은 전·월세를 알아볼 예정이다. 그가 고급 시니어 레지던스를 선택한 것은 차별화된 건강·의료 서비스 때문이다. A 회장은 “식사와 청소, 세탁을 비롯한 가사에서 해방되고 건강 관리와 각종 여가 활동 지원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시니어 레지던스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노인복지주택은 의료·생활 서비스를 월세 주거와 결합한 형태다. 대형 건설사와 디벨로퍼(부동산 개발회사)뿐 아니라 금융회사까지 앞다퉈 시니어주택 시장에 진출해 선택 폭이 넓어지고 있다.
식사·헬스케어·취미 프로그램 제공
LH(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이 지난달 펴낸 ‘은퇴자 주거복합단지 선호도 및 유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장년층 5명 중 3명(64.2%)이 향후 은퇴자를 위한 주거복합단지에서 살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과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45세 이상 136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시니어주택 잠재 수요가 작지 않다는 얘기다.
주택 수 산정 제외(임대형)와 전세 대비 저렴한 보증금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수도권 시니어주택 기준으로 보증금 4억~6억원에 부부(2인 기준) 월 생활비 300만~400만원이 든다. 지방은 월 생활비가 200만~300만원으로 내려간다. 보증금은 전·월세와 동일하게 전입신고, 확정일자, 전세권 설정이 가능하다. 입주자가 사망하면 자녀에게 보증금을 증여하는 절차도 돕는다.
디벨로퍼 엠디엠이 경기 의왕시 백운밸리에서 입주자를 모집 중인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1378가구)이 관심을 끈다. 사우나와 실내 수영장, 음악실, 도서관, 영화관 등을 갖춘 입주민 전용 커뮤니티 시설 ‘클럽 포시즌’(1만1500㎡)이 단지에 있다. 자서전 쓰기, 캘리그래피 등 커뮤니티 시설에서 여는 각종 강좌와 프로그램이 50여 개에 달한다.
도심과 가까운 준공 1~2년 차 단지도 시니어의 관심을 모은다. 건설사업관리(PM) 기업 한미글로벌이 지난해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서 첫 입주자를 모집한 ‘위례 심포니아’(115가구)가 대표적이다. 한의사 등 전문 인력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 레지던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3월부터 입주자를 모집한 ‘소요한남 바이 파르나스’(111가구)는 보증금 50억원에 월세만 500만원을 웃돈다. 가사 노동과 음식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고액 자산가를 겨냥한 ‘하이엔드’ 서비스를 선보인다. 5성급 파르나스호텔과 헬스케어 기업 차움, 차헬스케어가 협업해 24시간 입주민을 밀착 관리한다. 조만호 무신사 의장이 지분을 출자한 브릭스디벨롭먼트가 개발하고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았다.
이달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서 나올 ‘남판교 더 힐’도 관심을 모은다. 단지는 지하 8층~지상 15층, 총 892가구(전용면적 59~99㎡)로 이뤄진다. 이 중 713가구는 분양형, 179가구는 임대형이다. 2015년 분양형 시니어주택을 금지하기 전 인허가를 마쳐 분양이 가능한 마지막 물량이다. 디벨로퍼 시원이 개발하고 현대건설이 시공한다. 시니어케어 전문기업 케어닥이 위탁 운영을 맡는다.
병원과 금융그룹도 시니어주택 경쟁
건설사와 대학병원이 컨소시엄으로 추진하는 시니어 주거도 잇따르고 있다. 우미건설과 고려대병원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은 지난 3월 ‘화성동탄2 종합병원 유치 패키지형 개발 사업’ 협약을 맺었다. 700병상 이상을 갖춘 종합병원과 노인복지주택, 재활병원 등을 동탄2신도시에 짓기로 했다.
금융그룹도 실버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서울 평창카운티(164가구)를 운영 중인 KB금융그룹은 2028년 은평 시니어타운(규모 미정)을 조성할 예정이다. 신한라이프케어가 ‘은평 시니어주택’(2027년·214가구), 하나금융이 ‘하나 더넥스트 라이프케어’(2027년·150가구)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은 여전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모자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고령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는데도 시니어 주거 시설 수용 비중은 1%에 못 미친다. 고령 인구 대비 공급 비중은 0.12%로 미국(4.8%), 일본(2%)보다 낮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시니어주택은 40곳 9006가구, 고령자복지주택은 3956가구다.
전문가들은 시니어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분양형을 일정 부분 허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부실 운영 등 문제가 불거져 2015년 노인복지법 개정 이후 민간이 짓고 운영하는 노인복지주택은 임대형만 허용된다. 사업자는 임차보증금과 월 이용료만으로 장기간 투자비를 회수해야 한다.
시니어 주거 전문가인 문성택 무이재한방병원장은 “수도권은 토지 비용이 많이 들어 분양하지 않으면 사업자의 초기 투자 규모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규제를 풀어 분양형과 임대형을 7 대 3 정도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형 시니어 레지던스 입주 대기만 최소 3년
국내 1호 시니어주택은 1988년 경기 수원시에서 운영을 시작한 ‘유당마을’이다. 이후 여러 업체가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식사와 의료 지원 등 관리가 까다로워 폐업한 곳이 많다. 최소 10년 넘게 잘 유지되고 있는 시설도 있다. 주로 중견·대기업이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입주민을 돌보는 곳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 중인 노인복지주택은 43곳이다. 이 중 100가구를 웃도는 시니어 레지던스는 35곳이다. 보통 도심형과 전원형으로 구분된다. 병원이 가까운 도심형을 선호하는 추세다. 시니어 주거 전문가들은 ‘월세를 감당할 경제력,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입지, 다양한 여가 활동 제공’을 시니어 레지던스 선택의 세 가지 기준으로 꼽는다.
입주 희망자 대기만 최소 3년 이상 걸릴 정도로 인기 있는 시니어주택에는 서울 광진구 ‘더클래식500’(380가구), 경기 용인시 ‘삼성노블카운티’(540가구), 서울 강남구 ‘더시그넘하우스’(170가구) 등이 있다. 2010년부터 국내 시니어주택의 대형화와 고급화를 이끌며 성공한 단지라는 게 공통점이다. 세 곳 모두 시니어주택 핵심 인프라인 ‘대형 병원 연계’가 잘 돼 있다. 더클래식500은 건국대병원, 더시그넘하우스는 삼성서울병원과 가깝다. 삼성노블카운티는 단지 내 자체 클리닉을 운영하고, 삼성서울병원을 주 2회 왕복하는 입주민 전용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또 고품질 식사, 운동, 여가를 돕는 전문 인력 등 여러 면에서 빠지지 않는 서비스로 입주자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
유당마을도 시니어주택을 고민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설립 후 37년째 잘 운영되고 있는 ‘장수 단지’다. 시설이 낡아지면 적극적으로 개보수해 왔다. 거동이 불편할 때 단지 내 ‘케어홈(요양원)’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연계도 잘 돼 있다. 우석문 신한라이프케어 대표는 “시니어주택은 독립생활이 가능한 상태뿐 아니라 간호가 필요한 시기까지 함께할 수 있는 곳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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