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수입쿼터 확대하고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美가 홍보 가능한 카드 제시
알래스카 LNG 사업 검토도
시간 쫓기듯 협상해선 안돼
비관세 장벽 해소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시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카드를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한미 관세 협상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시한을 재설정했지만 여기에 쫓길 필요는 없다는 진단도 나왔다.
8일 통상 전문가들은 한국이 대미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로 △농산물 수입 쿼터 확대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허용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 완화 등을 꼽았다.
미국 측이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 장벽 중 협상이 가능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앞서 한국 정부에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규제 완화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과 같은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했다.
미국 측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제시하지 않은 만큼 정부가 내어줄 수 있는 카드를 빠르게 정리해 내놓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미 산업 협력만으로는 트럼프 행정부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양주영 산업연구원 경제안보실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명분상 카드를 만들어주는 게 유효한 협상 전략이 될 것 같다”며 “농산물 시장 개방, 비관세 장벽 완화, 즉각적인 대미 투자 등 단적으로 보여줄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관세 장벽 중에서는 완화 시 한국과 미국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양보를 한다면 결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들 중에 우리가 선진 경제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게 맞다”며 “온라인플랫폼법과 디지털 규제 등도 대다수 디지털 서비스 사용자의 후생이나 효용을 중심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에 대해서는 국내 정서를 감안해 간접적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농산물 수입 쿼터를 조정하거나 수입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시장 비관세 장벽을 열어주는 방안도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만큼 검토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미국이 투자를 원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역시 협상 카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현시점에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긴 어렵겠지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사 정도는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당의 싱크탱크이자 이한주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원장으로 있는 민주연구원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관세 협상을 연계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민주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현황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LNG 상선 및 군함 건조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를 지렛대로 삼아 관세 인하 협상이 가능하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이용한 관세 협상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보고서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며 투자금 회수까지 5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시간에 쫓기듯 협상에 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확실성을 무기화해 상대를 압박하는 만큼 여기에 휘말려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8월 1일이란 협상 시한도 파이널이 아니다”며 “한미 간 협상이 잘 진행되고 협상 경과에 서로 만족하는 상황이라면 8월 1일 이후로 협상 시한이 얼마든지 연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