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심의 기준에도 없는 '층수 완전혼합' 강행 논란
임대·분양 가구 구분 없이
동호수 완전추첨 방식 적용
사업 속도내던 한강변 단지
고층·한강뷰 조합 몫 줄자
"고생은 우리가, 과실은 市가"
"재산손해" "역차별" 분노
市, 차별 해소 불가피 입장
"용적률 상향 정당한 대가"
◆ 재건축 소셜믹스 갈등 ◆
서울시가 임대·분양 가구를 구분하지 않고 한 단지에 완전히 섞어 배치하는 '소셜믹스 완전 혼합' 방침을 고수하면서 서울 도심 재건축 현장마다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임대주택 차별 철폐'라는 정책 명분은 좋지만 현장에서는 설계권 침해, 사업성 악화, 조합원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택 배치를 추첨에 맡기면 조합원이 선호하는 동과 층을 선점할 수 없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대주택이 한강 조망 고층에 배정되고, 조합원은 비조망권인 저층에 배정받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7년 이전까지는 재건축 단지들이 조합원 물량을 우선 배정한 후 남는 가구에 공공임대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듬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이 방법이 막혔다. 개정된 시행령 48조에 따르면 "용적률 완화에 따라 공급되는 국민주택규모 임대주택은 '공개 추첨' 방법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해당 시행령이 2018년부터 실시돼 임대주택을 추첨 방식으로 배치하는 제도가 정착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가 도입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지만 잠잠하다가 최근 한강변 인근 정비사업지들이 심의에 줄줄이 착수하면서 논란이 점화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재건축 사업을 억제하면서 사업 기간이 지연되다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고 재건축·재개발에 사업 속도가 붙자 속속 심의 단계에 진입하면서 임대와 분양 주택 배치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다. 총 3930가구 대단지를 최고 70층, 약 6500가구로 재건축하는 이 사업장은 최근 통합심의에서 서울시로부터 '임대가구가 한강변 주동·고층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계안이 보류됐다. 서울시는 "복합용지 내 일부 동에만 편중된 배치, 저층부 집중 등 차별 요소가 명백하다"며 전면 재조정을 요구했는데 조합은 마지못해 이를 수용했다.
같은 갈등은 여의도 공작아파트, 압구정3구역, 대치 구마을3지구 등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는 각 단지에 대해 동·호수 무작위 추첨 도입, 한강 조망권 주동에도 소형 임대 배치, 임대·일반 가구 구분 불가 등을 인허가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정비업계와 조합원들은 서울시가 임대주택 배치 문제를 두고 설계 단계부터 개입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건축물 심의 기준 제13조 임대주택계획을 보면 임대주택 공급은 엘리베이터를 공유하고 평면과 건물 형태로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이 구분되지 않도록 계획하면 된다. 같은 건물에서 같은 엘리베이터 시설을 활용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차별이 없게 계획하면 됐지, 같은 건물 내 층수까지 섞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시가 권한 없이 완전 혼합을 강행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러한 기준이 '건축심의 제13조' 및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부합하며 위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임대주택이 특정 동, 저층, 북향 등에 몰리면서 외형적 분리는 물론, 실질적 사회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소셜믹스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비업계와 조합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행정이라는 입장이다.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정비사업은 조합원이라는 민간이 주체가 되어 수십 년간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업인데, 가장 핵심인 고층·조망 가구까지 추첨으로 넘기라면 사업을 할 유인이 없다"며 "조합원 입장에선 '기여는 우리가 하고 과실은 서울시가 챙긴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층 배치는 사업성에 직결된다.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 용산구 래미안첼리투스 등 서울 주요 단지에서는 고층 조망권에 따라 동일 평형에서도 수억~수십억 원의 시세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구조에서 고층·한강변 동을 임대가구로 돌리라는 요구는 곧 조합원의 분양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소셜믹스 자체보다는 기준의 자의적 적용과 과도한 간섭 방식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공공성과 형평성은 중요하지만, 사업의 주체인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건 정책 신뢰를 해치고 사업 속도를 늦추게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직 서울 시내 임대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당분간은 소셜믹스의 목표가 '질'보다는 충분한 임대 물량 확보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여전히 "공공임대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정당하게 기여를 받는 것이며 아무리 한 단지여도 계층 간 분리와 차별은 더 심해진다"고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김유신 기자 / 손동우 기자 / 위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