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천 암각화’ 발견 55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갯벌·가야고분군 이어 17번째
고래잡이 주제 희소성 돋보여
선사~역사시대가 한 바위에
35년전 첫 발견 문명대 교수
“이젠 훼손 막을 보존책 시급”
“울산 반구천 암각화는 ‘국보 중의 국보’이자 우리나라 선사 문화의 정점이지요. 55년 만에 세계에서 인정받으니 너무나 감개무량합니다.”
12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신규 등재되자 두 손을 번쩍 들며 포효한 사람이 있다. 1970년대 최초의 발견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84)다. 그는 13일 매일경제신문과 전화 통화하며 “당시 스물아홉의 나이 동국대박물관 전임 연구원으로 겨울방학 기간 불적 조사를 하러 갔다가 발견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최초의 발견일은 1970년 12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대 불교 유적 조사단은 울산 울주군 천전리 일대에서 우연히 동심원, 마름모 등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다. 높이 약 2.7m, 너비 9.8m 바위 면을 따라 620여 점의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듬해인 1971년에는 천전리 암각화로부터 약 2㎞ 떨어진 곳에서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 사냥 모습 등 350여 점이 빼곡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도 찾아냈다.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주름이 사실적인 혹등고래 등 57점의 고래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주목받았다.
두 암각화 모두 국보로 지정됐으며 발견 55년 만에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포함하는 단일 유산이자 정식 명칭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이유에 대해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6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 약 6000년에 걸쳐 다양한 시기의 그림이 한 표면에 새겨진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바위에 그린 그림, 즉 암각화를 40년 넘게 연구한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다른 암각화와 달리 반구천 암각화는 커다란 바위 하나에 그림이 집중돼 있어 마치 캔버스에 작품을 한 것과 같다”면서 “사냥으로 먹고사는 선사인들이 공동체 생존을 기원하며 그린 주술용 유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명대 교수는 “이제는 보존 대책이 시급하다”며 “연구가 아직 미진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선사 유적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 수위에 따라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서 훼손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지 15년 만에 뒤늦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유기도 하다. 발견 50년을 맞은 2021년 정부는 사연댐에 15m 폭의 수문 3개를 2030년까지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마련했으나 울산시는 대체 식수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이후 총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 중 문화유산은 15건, 자연유산은 2건이다.
한편 한민족의 대표 명산인 ‘금강산’도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북한은 금강산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성격을 모두 지닌 복합유산으로 신청했으며, ‘고구려 고분군’(2004년)과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에 이어 북한의 세 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금강산은 높이 1638m의 비로봉을 중심으로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지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자연유산이다. 동시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이상향으로서 겸재 정선을 비롯한 조선시대 화가들의 화폭에 등장하는 등 문화유산의 성격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