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히 빚 갚은 인센티브…빚 탕감 전적 있으면 감면율 낮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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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②
기준·절차 보완…정책 수용성 높이려면 성실 상환자 인센티브 등 강화
'재원 절반' 감당하는 금융권, 차등 출연 필수…업권별 유인책 필요해

  • 등록 2025-07-08 오전 5:00:00

    수정 2025-07-08 오전 5:00:00

[이데일리 김국배 최정훈 이수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악성 채무는 탕감해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밝혔지만 채무 탕감(배드뱅크)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사회 통합과 약자의 재기 지원, 국가 경제 도움 등의 차원에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기준과 절차 등 사업 설계에서 정교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형평성 여전히 불씨

이번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은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이하의 빚을 배드뱅크에서 일괄 사들여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따라 전액 소각하거나 감면하는 방식이다. 별도 신청 없이 자동 적용하는 구조다. 금융위원회는 “정말 갚을 수 없는 빚만 소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꼬박꼬박 빚을 갚아온 사람만 억울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올해 4월까지 5년 4개월간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이하 빚을 상환한 채무자는 361만명, 상환액은 1조원이 넘는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빚을 열심히 갚은 이들 처지에서 허탈감을 달랠 수 있는 보완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등 보완 조치가 있어야 정책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책금융을 이용할 때 이자율을 감면해주거나 우선권을 주는 식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며 “과거 채무 조정 등 정책적 지원을 반복적으로 받은 채무자는 제외하거나 감면율을 낮추는 등 차등 적용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동일 차주에 대한 반복 수혜를 제한하고 과거 수혜 여부에 따른 차등 적용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000만원 이하’라는 매입 기준이 1인당이 아닌 금융회사별 기준이어서 실제로는 5000만원이 넘는 빚을 탕감받는 이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도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금융위는 1인당 5000만원 초과분의 처리 방안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3분기 세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논란거리였던 외국인 지원 범위에 대해 금융위는 “과거 채무 조정 사례 등을 고려해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영주권자와 결혼 이민자는 우선 포함할 전망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사각지대 우려…정확한 선별 관건

하루 이틀 차이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사각지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7년 이상 연체한 빚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정책은 대책 발표 시점을 기준일로 보면 2018년 6월 19일 이후 연체한 빚은 대상에 포함하지 않을 수 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대출금의 최대 80%를 감면해주는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상자가 2020년 4월 이후 채무가 발생한 사람으로 한정한다. 즉 그 사이에 채무가 발생하거나 연체를 시작한 채무는 정부 출자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결국 이들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며 사업 설계 보완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새출발기금은 2020년 4월부터 2024년 11월 중 사업을 영위한 차주가 보유한 2020년 4월 이전 발생 채무도 지원한다”며 사각지대 발생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2020년 4월 이전 폐업한 일부 소상공인은 2개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부채 상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책의 성패는 채무자의 재산과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고 채무 조정 후 남은 빚을 성실하게 갚아나갈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는 데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제 새출발기금도 심사 절차가 길고 까다로워 집행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며 “배드뱅크 역시 초기에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소각에 속도가 나지 않고 오히려 받아야 할 사람은 빠지고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을 포함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금융위는 주식 투자로 부채가 발생하는 금융투자 업권과 유흥업 등을 영위하는 소상공인 등의 채권은 매입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한 상태다.

재원 마련 방안도 쟁점이다. 총 8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소요 예산 중 4000억원은 이번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확보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각 대상에 가까운 자산에 대해 일정 수준의 매각 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에도 유인이 없는 건 아니나 안정적인 재원 조달을 위해선 업권별 유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출연 여력이 낮은 업권에 동일한 부담을 부과하면 사실상 참여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차등 출연금 구조는 필수적이다”며 “단순히 규모 기준으로 차등화하는 것뿐 아니라 부실채권 보유 비중, 자본 총계, 재무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출연금 산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배드뱅크 출연금을 일정 비율까지 자기자본으로 인정해주거나 출연금 손금(비용) 처리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지용 교수도 “현금 출연이 어렵다면 채권 매각이나 신용공여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드뱅크는 해당 채권을 채권가액의 평균 5% 수준으로 매입할 예정인데 금융기관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2.5%로 하향 조정하는 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산정책처는 “이 경우 금융회사 기여금 없이 정부 출자금만으로 목표한 규모의 채권 매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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