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글로벌 사모펀드(PEF)운용사 KKR이 영국의 정밀 계측 장비업체 스펙트리스를 손에 넣을 것으로 보인다. 경쟁사 대비 높은 인수가를 제시한 데 이어 JP모건과 제프리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대규모 인수금융 주선에 잇따라 가세하면서 자금 조달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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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글 이미지 갈무리) |
10일 현지 업계에 따르면 JP모건과 제프리스, 크레딧아그리콜 SA 등 글로벌 투자은행은 KKR의 스펙트리스 인수를 뒷받침하기 위해 17억 5000만파운드(약 3조 27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 주관에 나섰다. 인수금융은 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외부(금융기관)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통상 사모펀드운용사가 인수 자금 일부를 차입해 인수 구조를 짜는 식의 전략이다.
은행들이 대규모 인수금융에 적극 나서는 배경에는 △짭짤한 수수료 수익 △톱티어 딜(deal) 참여를 통한 브랜드 가치 제고 △시장 점유율 유지 △주요 PEF와의 관계 형성 등이 꼽힌다. 특히 은행들이 수천억 원대 대출을 주선할 경우 이들이 얻는 이자 수익은 물론이고 주선 수수료는 상당한 편이다. 여기에 우량 대출 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이 몰리는 가운데 은행 입장에선 좋은 조건의 거래를 선점함으로써 시장 내 입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인수금융 딜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금융사로서의 평판뿐 아니라 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이러한 행보는 앞서 KKR이 영국 스펙트리스 측에 41억 파운드(약 7조 6000억원)의 인수가를 제시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스펙트리스는 영국 최대 정밀 계측 장비 및 분석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으로, 공장과 연구소, 전자제조 업체 등에서 온도와 압력, 진동 등의 데이터를 정밀하게 측정하거나 테스트할 때 필요한 장비를 개발한다. 스펙트리스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측정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솔루션까지 제공해 고객사의 품질 관리 및 효율성 개선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객군이 자동차와 반도체, 제약, 에너지, 전자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토대로 시장 입지를 공고히 다져왔다.
글로벌 사모펀드운용사들은 스펙트리스가 M&A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러브콜을 외쳐왔다. 특히 KKR과 어드벤트인터내셔널은 스펙트리스의 제품력과 기술력, 사업 다각화 가능성, 사모펀드 인수 후 운영 효율성 개선 여지에 주목하면서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스펙트리스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KKR은 어드벤트인터내셔널보다 4억파운드 가량 높은 인수가를 제시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한편 현지 자본시장에서는 KKR이 이번 인수로 영국 M&A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KKR은 앞서 영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 글로벌데이터와 민영 상수도 기업 템스워터 등의 딜에서 발을 빼면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 현지 업계 한 관계자는 “(KKR이) 정밀 계측 장비 선두주자인 스펙트리스를 낙점한 것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이번 인수 거래가 완료될 시 KKR은 영국 내 투자 역량과 존재감을 다시금 각인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